
280억원대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혐의로 기소된 9명이 1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핵심은 범죄의 ‘유무’가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의 ‘절차 위반’이었다. 경찰이 금융기관과 포털업체 압수수색 과정에서 영장 원본이 아닌 사본을 팩스로 제시했고, 압수 이후 압수품 목록조차 교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이 증거를 배제하면서 공소 유지가 무너졌다.
수사기관은 투자사기 사건을 수사하던 중 환전 계좌 정황을 포착해 해외 IP 추적을 통해 청주의 한 사무실을 특정했고, 금융기관 압수수색으로 계좌에서 월세·렌트비·통행료 등이 지출된 흔적을 확인했다. 포털 클라우드에서 운영 관련 사진도 확보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부가 문제 삼은 대목은 ‘무엇을 찾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찾았는가’였다. 영장 원본 제시 의무를 지키지 않은 채 확보한 자료는 위법수집증거로 보고,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피고인들이 관련돼 있던 것이 아닌지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하나”라고 적시했다. 그럼에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못 박았다. 증거가 ‘배제’되면 남는 건 의심뿐이고, 의심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형사재판의 원칙이 그대로 관철된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영장 원본 제시와 압수목록 교부는 피의자 권리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이 남긴 메시지는 더 거칠다. 수사기관이 기본 절차를 어기면, 설령 사회적 해악이 큰 도박사이트 운영 같은 사건이라도 법정에서는 ‘증거 없음’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이다.
이 지점에서 강한 의심이 생긴다. 사법부의 판단이 법리적으로는 정교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서류’와 ‘절차’가 범죄 혐의를 사실상 면책해주는 통로가 되는 순간, 국민이 체감하는 정의는 급격히 흔들린다. 법은 권력의 폭주를 막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그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 때 남는 것은 “결국 큰 사건은 빠져나간다”는 냉소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범죄자를 봐줬다기보다, 수사기관이 스스로 공소 유지의 기반을 허문 데 가깝다. 재판부가 지적했듯 수사기관은 의심된 사무실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않아 컴퓨터 등을 확보하지 못했고, 관련자 조사로 진술증거를 충분히 쌓지 못하는 등 배제된 증거 외에 입증 자료가 부족했다는 취지다.
대형 도박사이트 사건에서 영장 집행의 기본 절차가 허물어졌다는 사실은, 단순 실수로 치부하기 어렵다. 수사 실무의 교육, 영장 집행 체크리스트, 디지털 증거 확보 프로토콜, 현장 지휘 책임 소재가 어디까지 촘촘했는지를 되묻게 한다.
이번 사건은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교과서적 결론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절차는 원칙이고,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그 원칙을 현장에서 작동시키는 시스템이 허술하면, 원칙은 정의의 버팀목이 아니라 ‘허점’으로 변한다.
수사기관은 “뒤늦게 영장 원본을 제시했다”는 사후 수습으로는 법정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남는 질문은 하나다. 절차를 어긴 대가로 사회가 감당한 ‘무죄’의 비용을,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