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대학가에서 인공지능을 계기로 한 학과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중국커뮤니케이션대학(중국전매대·中国传媒大学) 측은 사회적 논란이 된 ‘번역·사진 등 16개 전공 및 방향 조정’이 단순한 폐지가 아니라, AI 시대에 맞춘 체계적 재편이라고 설명했다. 학교는 기존 전공을 줄이는 동시에 스마트 영상, 스마트 미디어 등 AI 융합형 전공을 새로 배치하며 교육 체질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움직임은 개별 대학의 돌출 행동이 아니다. 중국 교육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등 5개 부처는 2023년 발표한 개혁안에서 “2025년까지 대학 학과·전공 배치의 약 20%를 최적화 조정하겠다”고 못 박았다. 핵심은 신기술·신산업·신업태에 맞는 전공은 늘리고, 산업 변화와 맞지 않거나 경쟁력이 약해진 전공은 과감히 줄이겠다는 것이다.
중국커뮤니케이션대학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조정 대상이 상징적이기 때문이다. 번역과 사진, 일부 영상·예술 관련 전공은 생성형 AI의 직접적인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분야로 꼽힌다. 텍스트 번역은 이미 대형언어모델과 기계번역이 빠르게 대체·보조 영역을 넓히고 있고, 이미지와 영상 제작 역시 생성형 AI 도구가 초안 제작과 후반 작업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고 있다. 이 대학의 랴오샹중 서기는 최근 인터뷰에서 미래를 “인간과 기계가 분업하는 시대”로 규정하며, 교실 수업의 형식·내용·사고방식까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가 실제로 공개한 2025년도 학부 전공 설정 공시를 보면, 중국커뮤니케이션대학은 게임과학기술, 전자스포츠, 브랜드학 등 3개 전공 신설을 신청하는 동시에 국제경제무역 등 7개 학부 전공 폐지를 추진했다. 교육부가 공개한 2024년도 학부 전공 승인 결과에는 이 학교의 ‘스마트 시청공정’, ‘스마트 공정과 창의디자인’, ‘스마트 영상예술’ 같은 신설 전공이 포함돼 있다. 줄일 전공은 줄이고, AI와 산업 현장에 맞는 전공은 새로 세우는 방식이 이미 제도화된 셈이다.
수치로 보면 변화의 속도는 더 분명하다. 중국 교육부는 2025년 4월 발표에서 2024년도 전국 대학의 학부 전공 가운데 1,839개 전공점이 새로 늘었지만, 동시에 1,428개 전공점이 폐지되고 2,220개 전공점이 모집 중단됐다고 밝혔다. 폐지와 중단 규모가 신설 규모를 크게 웃돈다는 점에서, 지금의 개편은 ‘증설’보다 ‘정리’에 가까운 국면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다른 대학들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화동사범대는 2025년 정보공개에서 예술교육, 번역, 광고학, 회화, 조각 등 24개 전공을 중단했다고 공시했다. 중국 내 대학들이 인문·예술·어문 계열 일부를 축소하는 대신 데이터, AI, 융합공학 계열을 강화하는 흐름이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교육부가 2025년판 학부 전공 목록에서 새로 반영한 29개 전공을 보면 방향이 더욱 선명하다. 스마트교육, 스마트 시청공정, 디지털연극 등 기술과 기존 분야를 결합한 전공이 눈에 띈다. 특히 ‘스마트 영상예술’이나 ‘스마트 시청공정’ 같은 명칭은 과거의 사진·방송·영상 제작 교육이 더 이상 독립적인 기술훈련만으로 유지되기 어렵고, 알고리즘 이해와 인간의 기획·판단·연출 역량을 결합하는 쪽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단순히 “예술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기본 제작을 맡는 대신, 인간은 기획·의미 부여·가치 판단·콘셉트 설계·품질 검수 같은 상위 역량으로 이동하라는 신호에 가깝다. 중국커뮤니케이션대학 역시 최근 설명 자료에서 AI를 전면 배제하기보다, 학생이 AI를 활용하되 독립 사고력과 인간 고유의 판단력을 잃지 않도록 손글씨 답안, 폐쇄형 시험, 독자 창작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기본기’를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번역 분야가 곧바로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번역교육 관련 연구들은 AI 번역 도구가 속도와 생산성을 높이는 데 분명한 이점이 있지만, 맥락 해석, 문화적 뉘앙스, 오류 검수, 민감 분야의 품질 통제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개입이 중요하다고 본다. 국제기구와 업계 자료 역시 AI가 일부 업무를 대체하는 동시에, AI 활용 능력과 검수 능력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인력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25년 보고서에서 AI·빅데이터를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핵심 기술 역량으로 꼽았다.
결국 지금 중국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은 “번역가가 필요 없어졌다”거나 “촬영은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 대학이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 인재를 길러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가깝다. 반복 가능하고 자동화되기 쉬운 기술은 AI가 맡고, 사람은 질문 설계, 스토리텔링, 윤리 판단, 맥락 해석, 최종 책임을 맡는 구조로 교육 목표가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중국 사례는 한국과 다른 나라 대학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학과 이름이 유지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전공이 AI 이후의 직무 구조에 맞게 얼마나 빨리 교육 내용을 바꾸느냐다. 중국 교육당국은 이미 2025년까지 20% 수준의 전공 재배치를 목표로 했고, 2025년 8월에는 그 목표가 예정대로 달성됐다고 밝혔다. 대학이 더 늦기 전에 학과판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 뉴스의 진짜 제목은 “번역·촬영 전공 폐지”가 아닐 수 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이다. AI 시대의 대학 개편이, 이제 선언이 아니라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중국 대학가에서 그 신호탄이 먼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