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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도 신뢰도 없는 권력 트럼프는 왜 민주주의의 적인가
  • 이시한 기자
  • 등록 2026-03-18 09: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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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권교체에서 파병 불필요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트럼프의 말
  • 동맹과 시장을 흔드는 즉흥 발언 신뢰를 잃은 권력의 위험
  • 민주주의의 뿌리인 약속과 계약을 허무는 광인 정치의 본질


시론 | 트럼프, 간밤엔 말 바꿔서 “도움 필요 없다”… 광인 정치가 민주주의의 토대를 허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전쟁 발언은 이제 ‘전략의 유연성’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포장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며칠 사이에도, 심지어 하루 사이에도 말이 바뀐다. 정권교체를 말하다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고, 협상은 없다더니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 하고,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해협 경비를 도와달라고 압박하다가 같은 날 “우리는 원래 누구 도움도 필요 없었다”고 외친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의 언어가 이 정도로 흔들리면, 흔들리는 것은 시장만이 아니다. 국제질서와 동맹, 법치와 신뢰까지 함께 흔들린다.


정권교체인가, 무조건 항복인가, 단기 제한전인가

트럼프는 2월 28일 이란 공격에 나서면서 스스로 내세웠던 “어리석은 전쟁을 피하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사실상 정권교체까지 시야에 넣은 듯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어 3월 5일에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란의 차기 지도자를 “이란과 함께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고, 3월 6일에는 “무조건 항복” 외에는 어떤 거래도 없다고 못 박았다. 3월 7일에는 협상에 관심이 없으며 전쟁은 이란에 작동 가능한 군대나 남은 지도부가 없을 때 끝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 백악관 내부에선 전쟁 목표가 상당 부분 달성된 “제한적 작전”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전쟁의 목표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동한 셈이다.


같은 날에도 “도와달라”와 “우린 원래 안 필요했다”

더 심각한 것은 3월 15일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발언이다. 트럼프는 중동 원유에 크게 의존하는 약 7개국에 군함 파견을 요구하며 해협을 함께 지키라고 촉구했다. 3월 16일에도 여러 나라가 그 일에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유럽 주요국 다수는 즉각 참여를 거부하거나 유보했다. 그런데 3월 17일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군사적 성공 덕분에 이제 NATO의 도움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 사실 원래도 필요 없었다”고 적었다. 문제는 그날 늦게 다시 NATO의 불참을 “매우 어리석은 실수”라고 비난했다는 점이다. 도움을 청해 놓고, 거절당하자 “애초에 안 필요했다”고 말하고, 곧이어 다시 “왜 안 돕느냐”고 나무라는 식이다. 이쯤 되면 전략이 아니라 통치 언어의 붕괴다.



전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예측 불가능한 권력의 말이다

전쟁 중 지도자의 발언은 곧 정책 신호다. 원유 시장은 그 신호를 가격으로 번역하고, 동맹은 그 신호를 군사적 부담으로 계산하며, 적대국은 그 신호를 레드라인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로이터는 트럼프의 오락가락한 메시지에 에너지 시장이 출렁였다고 전했고, 백악관 내부에서도 유가와 휘발유 가격 상승이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AP도 트럼프가 “무조건 항복”에서 전쟁의 조기 종결을 시사하는 쪽으로 흔들리는 동안, 전쟁의 종료 시나리오 자체가 불분명해졌다고 짚었다. 전쟁 자체도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대통령의 말이 더 이상 예측 가능한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민주주의는 힘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뿌리는 결국 약속, 신뢰, 계약이다. 선거 공약은 유권자와의 계약이고, 동맹은 국가 간의 계약이며, 법치는 권력자도 말을 뒤집을 수 없도록 만든 사회적 계약이다. 그런데 트럼프식 정치는 그 모든 계약을 순간의 감정과 충동 아래로 끌어내린다. 오늘의 발언이 내일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오전의 메시지가 오후의 부정으로 지워지는 정치에서는 누구도 제도를 신뢰할 수 없다. 시장은 불안해지고, 동맹은 멀어지며, 시민은 피로해진다.


최악의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파괴자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외부의 적만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내부에서 제도의 신뢰를 갉아먹는 지도자에 의해 더 빨리, 더 깊게 훼손된다. 트럼프의 이란 전쟁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의 연속이 아니다. 그것은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공적 언어를 사적 충동으로 바꾸며, 국가 운영을 즉흥적 퍼포먼스로 전락시키는 정치의 민낯이다. 간밤에는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하고, 낮에는 “왜 우리를 안 도우냐”고 몰아붙이는 권력. 이런 권력이야말로 현대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할 최악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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