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주식은 오늘 팔았는데 왜 돈은 모레 주냐”라고 공개적으로 묻자, 개인투자자들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질문조차 잘 나오지 않던 증시의 오래된 관행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조정 의제로 검토해보자고 말했고, 한국거래소는 국제 동향을 보며 청산·결제 단축을 선제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취지로 응답했다.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불편이 이제는 제도 개편 논의의 정식 화두가 된 셈이다.
국내 장내주식 결제는 현재 기본적으로 T+2 체계다. 금융위원회 설명에 따르면 장내주식은 거래일(T)로부터 2거래일 뒤에 증권과 대금이 결제된다. 예컨대 월요일에 주식을 팔았다면, 최종 결제는 수요일에 이뤄진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팔았는데 왜 바로 돈이 안 되느냐”는 의문이 자연스럽지만, 시장 인프라 관점에서는 체결과 결제가 애초에 다른 절차다.
이재명이 띄운 공
이번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불편하다”는 민원을 대통령이 대신 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본시장 제도 전반을 손보겠다는 정책 흐름 속에서, 거래의 가장 기초적인 인프라 문제를 최고 권력이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T+2는 업계 안에서는 익숙한 표준이었고, 개인투자자에게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규칙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질문은 그 규칙이 정말 지금도 합리적인지, 아니면 디지털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할 유산인지를 묻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이날 대통령은 그 배경으로 미수거래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제 제기 차원의 발언이지, T+2의 유일한 원인을 정부가 공식 규정한 것은 아니다. 실제 제도 자료를 보면 T+2는 특정 투자기법 하나 때문에 유지되는 구조라기보다, 청산과 결제, 위험관리, 후선업무 전반이 맞물린 시장 표준에 가깝다.

체결은 1초, 결제는 2일…같은 거래가 아니다
투자자들이 가장 혼동하기 쉬운 대목은 “체결”과 “결제”를 같은 순간으로 보는 데 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 설명대로 체결 이후에는 먼저 청산이 이뤄진다. 청산은 누가 얼마를 주고받아야 하는지를 확정하는 과정이고, 결제는 그 확정된 의무에 따라 매도자는 주식을, 매수자는 현금을 실제로 넘겨 법적 의무를 끝내는 단계다. 앱 화면에 ‘매도 완료’가 떴다고 해서 모든 절차가 끝난 것이 아닌 이유다.
이런 구조는 괜한 형식주의가 아니다. 미국 SEC는 오래전부터 “시간은 곧 위험”이라고 설명해 왔다. 거래가 체결된 뒤 결제가 길어질수록 그 사이 상대방의 부도, 가격 급변, 유동성 경색 같은 변수가 끼어들 여지가 커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결제주기를 줄이는 방향 자체는 전 세계적으로 맞는 흐름이지만, 동시에 그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시장 배관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전제가 따라붙는다.
느린 관행의 출발점은 ‘종이 증권’ 시대였다
오늘의 T+2를 이해하려면 그 뿌리를 봐야 한다. 미국 SEC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청산·결제 시스템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미국 증권시장이 겪은 이른바 ‘페이퍼워크 크라이시스’의 산물이다. 당시 거래량이 급증하자 종이 주권을 옮기고 대조하던 수작업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고, 이로 인해 증권업계가 사실상 마비 직전까지 갔으며 다수의 증권사가 직간접적으로 무너졌다. 이후 시장은 ‘종이를 사람이 나르는 방식’에서 ‘중앙 인프라를 통한 전산 장부 이전’으로 바뀌었고, 오늘날 결제 시스템의 기본 골격도 그때 형성됐다.
다시 말해 오늘 주식을 팔고도 곧바로 돈이 들어오지 않는 관행은, 원래부터 투자자를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량 거래 시대에 시장을 멈추지 않게 하려는 방어장치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그 유산이 지금도 그대로 필요한지, 아니면 기술 발전에 맞춰 더 줄일 수 있는지가 된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T+2가 남아 있는 이유
“요즘은 다 전산인데 왜 아직도 이틀이냐”는 질문은 직관적으로 맞다. 실제로 한국은 이미 전자화된 자본시장이다. 그럼에도 T+2가 남아 있는 이유는 결제가 단순 송금이 아니라 ‘시장 전체 동기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증권 결제 시스템의 핵심 원리로 DVP, 즉 증권 인도와 대금 지급이 맞물려 이뤄지는 구조를 강조해 왔다. 돈만 먼저 나가거나 주식만 먼저 넘어가면 상대방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은 빠르기보다 먼저 ‘동시에, 안전하게, 대규모로’ 끝내야 한다.
여기에 다자간 차감, 기관 간 확인, 수탁과 보관, 결제은행 연계, 외국인 투자자의 환전과 자금이체 같은 후선업무가 얽힌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결제주기를 줄이면 미결제 수량 감소, 거래증거금 완화, 유동성 개선 같은 장점이 있지만, 그에 맞춰 청산·결제 업무 자동화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고 해외 투자자의 자금 이동과 환전 처리 시간이 촉박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SEC도 과거 검토 문서에서 시차, 복수 중개기관, 환전 필요성이 큰 교차국경 거래에서는 너무 빠른 결제가 오히려 정착 비용과 난도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디지털 시대에도 T+2가 유지되는 것은 “전산이 느려서”라기보다, 시장 전체가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앱은 즉시 반응할 수 있어도, 시장 전체의 청산·결제망은 수많은 기관이 같은 기준과 시간표로 맞물려야 한다. 이 때문에 결제주기 단축은 앱 개편이 아니라 시장 구조 개편에 가깝다.
미국은 왜 줄였고, 한국은 왜 아직 그대로인가
미국은 이미 T+1로 갔다. SEC는 2023년 규정 개정을 통해 대부분의 증권거래 결제주기를 T+2에서 T+1로 줄였고, 2024년 5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SEC는 이 과정에서 기관투자가 거래 확인을 더 당겨야 했고, 증권사와 시장참가자들이 시스템, 운영, 고객 안내 전반을 손봐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결제 단축이 단지 “하루 줄이자”는 선언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의 논리는 분명했다. DTCC는 T+1 전환 시 NSCC 마진의 변동성 구성요소가 41% 줄어들 수 있다고 추정했고, 운영 효율성과 자동화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봤다. 반면 그 전제 조건으로는 이메일·팩스 같은 수작업을 줄이고, 거래일 당일에 확인과 배분을 마치는 수준의 업무 혁신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빨라지는 대신 시장 참가자 모두가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이 아직 T+2에 머물러 있는 이유도 여기서 읽힌다. 결제주기 단축의 방향에는 큰 이견이 없더라도, 외국인 비중이 높은 시장 구조와 환전 문제, 시차, 수탁 체계, 후선 자동화 수준을 감안하면 하루 단축이 결코 버튼 하나 누르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도 미국 이후 글로벌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인프라 투자와 해외 투자자 처리시간 문제는 여전히 주요 과제라고 짚었다.

영국과 유럽의 준비가 말해주는 것
디지털 시대라면 당장 다 T+1로 가야 할 것 같지만, 실제 세계 시장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2025년 발표에서 2027년 10월 11일부터 T+1을 표준 결제주기로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이를 위해 업계 전반의 이행계획과 다수의 권고 과제를 수용했다. 유럽연합도 2025년 정치적 합의를 통해 같은 날짜인 2027년 10월 11일을 목표로 T+2에서 T+1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는 결제 단축의 방향은 분명하지만, 대형 시장일수록 수년간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왜 아직도 이틀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실제 답변은 이렇다. 기술은 빨라졌지만, 시장 전체가 안전하게 함께 빨라지려면 제도·전산·업무 관행을 한꺼번에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시장이 T+2를 유지하거나, T+1 전환을 하더라도 장기 로드맵 아래 움직인다.
금융사의 카르텔이나 로비 결과인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종종 이런 의심도 나온다. 돈을 하루라도 더 묶어두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낡은 관행을 고집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하지만 공개된 공식 자료와 주요국 정책 흐름만 놓고 보면, 적어도 결제주기 자체가 금융사의 카르텔이나 로비의 직접 결과라고 단정할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미국 SEC, 영국 정부, 유럽연합, 자본시장연구원 자료는 모두 공통적으로 결제기간 단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비용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현재의 T+2는 음모라기보다 관성과 복잡성의 산물에 더 가깝다.
물론 이해관계가 전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제주기가 줄어들면 증권사, 운용사, 수탁기관, 결제은행, 외환 담당 부서가 모두 더 촘촘하게 움직여야 하고, 그만큼 비용과 부담의 재배분 문제가 생긴다. SEC도 짧은 결제주기가 비용이 전혀 없거나 위험이 전혀 없는 변화는 아니라고 분명히 적시했다. 다시 말해 로비의 문제라기보다, 누가 얼마를 투자해 어느 속도로 바꿀 것이냐의 조정 문제에 가깝다.
이 질문의 끝은 ‘즉시 결제’일까
흥미로운 점은 이번 간담회에서 한국거래소가 블록체인 기반 거래가 확산되면 청산·결제 과정이 크게 달라지고 즉시 지급에 가까운 구조로 변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다만 그것이 곧바로 현재 상장주식 시장의 표준 결제를 즉시화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의 증시는 중앙청산, 위험관리, 규제감독, 대규모 거래처리라는 공공적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즉시 결제는 기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시장 설계의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질문은 그래서 의외로 본질적이다. “왜 돈을 모레 주느냐”는 불만은 단순한 생활형 불편이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이 얼마나 빠르고 얼마나 안전해야 하는가를 동시에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미 T+1로 움직이고 있고, 한국거래소도 준비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제 남은 것은 속도를 따라갈지 말지가 아니라, 어떤 위험관리 체계와 인프라 투자 위에서 따라갈 것인지다. 투자자가 기다리는 이틀은 낡은 관행의 시간일 수도 있고, 아직은 필요한 안전장치의 시간일 수도 있다. 이 논쟁을 제도 개편의 공론장으로 끌어올린 것, 그것이 바로 이재명이 띄운 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