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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만, 명칭 문제로 충돌…대만 “상호 대등 원칙 따라 조치”
  • 이시한 기자
  • 등록 2026-03-23 12: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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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의 공개 경고, 표기 논란 정면 제기
  • 한국 정부의 신중 대응, 기존 원칙만 재확인
  • 명칭 하나에 드러난 한·대만 비공식 관계의 민감성

픽사베이

입국카드 한 칸이 키운 외교 갈등…대만, 한국에 ‘남한’ 맞불 경고

한국 전자입국신고서에 적힌 ‘CHINA(TAIWAN)’ 표기가 결국 한·대만 관계의 민감한 신경을 건드렸다. 대만은 한국 정부가 자국 명칭을 바로잡지 않으면 한국 표기를 ‘한국’에서 ‘남한’으로 더 넓게 바꾸겠다고 경고했고, 한국 정부는 “한·대만 간 비공식 실질협력에 대한 기존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한다”는 원칙론만 재확인했다. 행정 시스템의 표기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992년 단교 이후 유지돼 온 한·대만 비공식 관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 묻는 외교 현안으로 번진 셈이다.


대만의 공개 경고, “3월 31일까지 답 없으면 추가 조치”

대만 외교부는 지난 18일 공식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 전자입국카드 시스템의 ‘출발지’와 ‘다음 목적지’ 항목에서 자국이 여전히 ‘CHINA(TAIWAN)’으로 표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상호 대등 원칙”에 따라 이미 3월 1일부터 자국 ‘외국인 거류증’에서 기존 ‘한국’ 표기를 ‘남한’으로 바꿨으며, 한국이 3월 31일까지 긍정적으로 답하지 않으면 대만의 ‘전자입국등록표’에서도 한국 표기에 상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대만은 이 문제를 두고 자국 외교부와 주한 대표부가 한국 측에 계속 시정을 요구해 왔다고도 공개했다.

이번 발표는 누적된 불만의 공개 분출에 가깝다. 대만 외교부는 이미 지난해 12월 3일에도 한국 전자입국카드의 ‘CHINA(TAIWAN)’ 표기가 사실과 다르고 대만 여행객에게 혼란과 불편을 준다며 한국 정부에 조속한 수정을 촉구한 바 있다. 당시에도 대만 측은 “한국 정부가 아직 긍정적으로 응답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이번 3월 조치는 그 연장선에서 나온 압박 카드로 읽힌다.


한국 정부, 수정 여부엔 답하지 않고 ‘기존 입장’만 반복

한국 정부의 공식 반응은 신중했다. 외교부는 19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정부는 해당 사항을 잘 인지하고 있다”며 “한-대만 간의 비공식 실질 협력에 대한 기존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입장하에서 제반 사항을 다루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표기 수정 여부나 협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는 대만의 공개 압박에 정면 대응하기보다, 외교 원칙을 앞세워 즉답을 피한 셈이다.

이 같은 반응은 한국이 처한 외교적 제약을 보여준다.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끊었고, 이듬해부터 민간대표부 형식의 비공식 관계를 유지해 왔다. 국가 명칭과 표기, 대표부 명칭, 서열 문제는 한·대만 관계에서 늘 가장 민감한 의제로 남아 있었다. 이번에도 한국 정부가 표기 문제를 기술적 오류 차원으로만 다루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은 문구 하나를 고치는 일이 곧 외교적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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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전자입국신고서였나…‘하나의 중국’ 원칙과 실무 시스템의 충돌

한국의 전자입국신고 제도는 2025년 2월부터 본격 도입됐다. 한국 외교부 재외공관 안내에 따르면 입국 3일 전부터 온라인으로 신고서를 제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대만이 독립된 선택지로 완전히 분리돼 있지 않고, 일부 항목에서 ‘China(Taiwan)’으로 묶여 나타난다는 점이다. 대만은 이를 단순한 분류 체계가 아니라 자국의 지위를 깎아내리는 “부당한 호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한국으로선 중국과의 외교 관계, 그리고 오래 유지해 온 대만 관련 기존 관행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대만 사회는 이 문제를 행정 편의가 아니라 상징 정치의 문제로 보고 있다. 대만 외교부는 18일 발표문에서 이 사안이 국내 사회와 민의 대표들의 높은 관심을 불러왔고, 정부도 자국민으로부터 한국 대응에 대한 실망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지속적으로 접수했다고 밝혔다. 최근 대만 안팎에서 ‘Taipei’보다 ‘Taiwan’을 더 분명히 드러내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논란은 단순한 표기 정정 요구를 넘어 정체성 외교의 한 장면으로도 해석된다.


경제·인적 교류는 촘촘한데, 외교는 여전히 얇은 얼음판

문제는 양측이 감정적으로 맞설수록 손해가 작지 않다는 점이다. 대만 경제 당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은 대만의 3대 교역상대였고, 대만은 한국의 5대 교역상대였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핵심 산업에서도 양측 교역은 밀접하다. 대만 외교부 역시 한국이 대만 여행객이 많이 찾는 국가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공식 수교는 없지만, 경제와 관광, 문화와 인적 교류는 이미 상당히 두텁게 얽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갈등은 더 미묘하다. 공식 외교 채널은 없고, 실질 협력은 많다. 서로 필요한 관계이지만, 국가 명칭과 지위 문제에선 누구도 쉽게 물러서기 어렵다. 대만은 ‘대등’과 ‘존엄’을 내세워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고, 한국은 ‘비공식 실질협력’이라는 오래된 틀 안에서 사태를 관리하려 한다. 결국 이번 논란의 향방은 한국이 전자입국신고서 표기를 기술적 수정으로 정리할지, 아니면 기존 원칙 아래 현상 유지를 택할지에 달려 있다. 3월 31일이라는 대만의 시한은 단순한 행정 마감일이 아니라, 한·대만 관계가 다시 한 번 현실주의와 상징정치 사이에서 시험대에 올랐다는 뜻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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