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장펀드 첫 직접투자 사례… 총 6000억 규모, 소버린 AI 경쟁력 확보 목표
리벨리온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 캡쳐
정부가 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에 2500억 원을 직접 투자하기로 했다. AI 시대 핵심 인프라의 자립을 선언하는 첫 본격 실탄이다.
금융위원회는 3월 26일 국민성장펀드 기금운용심의회를 통해 이 같은 투자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추진 중인 1차 메가프로젝트 7건 가운데 네 번째 승인 사업이자, 펀드 출범 이후 첫 직접투자 사례다. 민간 자금을 포함한 총 투자 규모는 6000억 원에 달하며, 투자 방식은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집행된다.
정부는 이번 투자가 리벨리온의 AI 반도체 양산과 차세대 칩 개발을 지원하는 동시에, AI 산업 생태계 고도화와 소버린 AI 경쟁력 확보, 나아가 '세계 AI 3강 도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리벨리온 창립자 박성현 대표 (사진: 리벨리온 홈페이지)
엔비디아 90% 독점 시대, 균열의 조짐
이번 투자의 배경에는 글로벌 AI 칩 시장의 구조적 쏠림이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현재 AI 학습·추론 시장에서 90% 안팎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CUDA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고객 '락인 효과(lock-in effect:한번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들어가면, 다른 것으로 갈아타기 어려워지는 현상)'까지 결합된 '풀스택 지배력(full-stack dominance : 전체 생태계를 장악하는 힘)'이 그 근거다.
그러나 시장의 흐름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AI 산업의 무게중심이 대규모 모델 학습에서 빠르고 효율적인 추론 서비스 쪽으로 이동하면서, 엔비디아의 점유율이 중장기적으로 다소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후발주자에게 좁지만 현실적인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최초 AI칩 유니콘'에 거는 기대
리벨리온은 2024년 말 SK텔레콤 계열의 사피온코리아와 합병을 완료하며 국내 AI 반도체 진영에서 가장 덩치 큰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한국 최초의 AI 칩 유니콘'의 탄생으로 평가한다.
회사는 올해 초 MWC 2025에서 펭귄솔루션스, SK텔레콤과 함께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생태계 구축을 위한 협력을 발표했다. 협력의 초점은 AI 추론과 소프트웨어 스택 공급에 맞춰져 있다. 추론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장 흐름과 정면으로 맞닿는 방향이다.
메모리 강국에서 AI 반도체 강국으로
한국 산업계는 오랫동안 "메모리는 세계 1위지만, AI 시대 핵심인 시스템 반도체 챔피언은 없다"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로 한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는 연산과 추론을 책임질 새 대표 기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져왔다.
이번 투자는 그 갈증에 대한 정부의 첫 공식 응답이다. 다만 과제는 분명하다. 진짜 의미의 'K-엔비디아'가 되려면 칩 성능뿐 아니라 양산 능력, 고객 확보, 소프트웨어 호환성, 글로벌 파트너십을 함께 입증해야 한다. 정부 역시 RCPS 방식 투자를 통해 기술적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공동으로 부담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를 즉시 대체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AI 공급망의 선택지를 넓히겠다는 장기 포석으로 읽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호가 아닌 자금 집행으로 시작된 이 도전이 한국 AI 산업의 지형을 바꿀 수 있을지, 시장의 눈이 리벨리온에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