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 = 청와대 제공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이번 한국 국빈 방문은 단순한 의전 행사가 아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4월 2일부터 3일까지 이틀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공식환영식과 국빈오찬, 경제·산업 관련 일정까지 소화했다. 이번 방문은 2015년 이후 처음 이뤄진 프랑스 대통령의 국빈 방한이자,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140주년을 맞은 한불 관계를 새 단계로 올려놓는 계기가 됐다. 양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기존의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했다.
한국과 프랑스의 인연은 처음부터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양국의 초기 접점은 프랑스 선교사들의 조선 진출을 통해 형성됐지만, 1866년 병인박해와 병인양요를 거치며 관계는 충돌의 형태로 기록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천주교 탄압으로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됐고, 이를 계기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하면서 양국의 본격적인 군사 충돌이 벌어졌다. 한불 관계의 출발점은 외교보다 긴장과 대립에 더 가까웠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와 환담하는 마크롱 대통령 부부 = 청와대 제공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적대에서 외교로 넘어가다
갈등의 시기를 지나 양국 관계를 공식 외교의 틀로 옮겨놓은 전환점은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이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관련 기념 자료들은 2026년이 바로 이 조약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가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140주년이 되는 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올해 마크롱 대통령의 방한은 단순한 기념 방문이 아니라,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공식 관계의 역사적 연속선 위에서 이뤄진 방문이라는 뜻이다.
한불 관계는 조약 체결 뒤에도 단선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 프랑스 조계와 파리 대표부를 거점으로 독립외교 활동을 이어갔다. 또 오늘의 한불 관계를 실질적으로 바꾼 결정적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프랑스와 한국이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프랑스대대를 통해 오랜 군사협력 관계를 확립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양국 관계가 단순한 외교 관계를 넘어 ‘함께 싸운 우방’이라는 기억을 공유하게 된 것도 이 시기부터다.
프랑스의 상징 에펠탑 = 픽사베이
전쟁 이후 한불 관계는 제도적으로 빠르게 정비됐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양국은 1958년 공사관을 대사관으로 승격하기로 합의했고, 1959년 초대 주한 프랑스 대사가 서울에 부임했다. 이어 1965년 문화협정 체결 등을 거치며 협력의 무게중심은 외교와 안보에서 문화·학술·민간 교류로 넓어졌다. 그리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한불 관계를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지금의 한불 관계는 바로 이 전후 제도화와 2004년의 관계 재정의 위에 세워져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공동언론발표를 통해 중동전쟁이 야기한 경제·에너지 위기에 공동 대응하고,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해상수송로 확보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양국은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을 선언하고, 공동성명 채택과 함께 3건의 협정, 11건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협력 분야도 방산, 항공우주, 반도체, 핵심광물, 양자기술, 원자력, 해상풍력 등으로 넓어졌다. 양국은 교역 규모를 2025년 150억달러에서 2030년 200억달러로 늘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결국 한국과 프랑스의 140년은 단순한 친선의 역사가 아니다. 종교를 통해 처음 접촉했고, 병인양요로 충돌했으며,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외교를 열었고, 한국전쟁을 통해 연대의 기억을 쌓았다. 이후 문화와 산업, 기술 협력으로 관계의 층위를 넓혀온 양국은 이번 이재명·마크롱 정상회담을 통해 그 관계를 다시 한 번 미래지향적으로 재설계했다. 과거의 인연을 기념하는 방문이 아니라, 그 오랜 축적 위에서 다음 10년, 다음 20년의 한불 관계를 새로 그리는 방문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방한의 의미는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