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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 병이 우리 집보다 비싸네…로마네 콩티 1945, 12억3000만원에 새 기록
  • 김도현 헬스케어 & 건강 전문 기자
  • 등록 2026-04-04 0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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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소성의 끝, 단 600병만 남은 1945년의 전설
  • 왜 이 병은 집값이 됐나…로마네 콩티와 초고가 경매의 공식
  • 마시는 사치에서 보관하는 자산으로, 와인 시장의 변신

12억 3천에 낙찰된 로마네 콩티 1945 = 애커와인 제공

서울 아파트 평균값과 맞먹은 한 병의 낙찰가

와인 한 병 값이 12억3000만원(약 US$812,500). 숫자만 놓고 보면 웬만한 집 한 채 값이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애커메럴앤드컨디트 경매에서 1945년산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이른바 로마네 콩티 한 병이 81만2500달러에 낙찰되며 와인 단병 경매 최고가 기록을 새로 썼다. 연합뉴스는 이 금액이 현재 환율 기준 12억3000만원 수준이라고 전했고, 애커 역시 이번 낙찰가를 “경매 사상 와인 한 병 최고가”라고 밝혔다. 흥미로운 건 이 숫자가 서울시가 제시한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 12억3000만원과 정확히 겹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와인 한 병이 우리 집보다 비싸네”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게 된 셈이다.


왜 하필 로마네 콩티인가…1.81헥타르가 만든 전설

로마네 콩티는 세계 최고급 부르고뉴 와인의 대명사로 통한다. 이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1.81헥타르 단일 포도밭에서 생산되며, 평년에도 연간 생산량이 5000병에서 6000병 정도에 불과하다. 소더비는 이 포도밭을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의 대표 포도원으로 소개하면서, 생산량 자체가 극도로 적고 희소성과 상징성이 압도적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로마네 콩티는 단순히 “비싼 와인”이 아니라, 애초에 시장에 거의 나오지 않는 초희소 자산에 가깝다.


애커와인 경매 = 애커와인 제공

1945년이 특별한 이유…전쟁의 끝, 마지막 수확, 단 600병

이번 기록의 핵심은 로마네 콩티라는 이름보다도 ‘1945’라는 빈티지에 있다. 1945년산 로마네 콩티는 총 600병만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는 이후 포도밭이 갈아엎어지기 전 마지막 빈티지였고, 더운 여름과 건조한 기후 덕분에 피노 누아가 천천히 익으며 뛰어난 숙성 잠재력을 갖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디캔터는 이미 1945년산 로마네 콩티 두 병이 당시 세계 기록을 깨뜨렸다고 전하면서, 이 빈티지가 “갈아엎기 전 마지막 해”이자 600병만 생산된 전설적 물량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경매는 바로 그 전설이 8년 만에 자신의 기록을 다시 갈아치운 장면이었다.


값은 병에 붙지 않는다…역사와 이야기, 소유권에 붙는다

와인 가격은 액체의 맛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특히 이런 초고가 경매에서는 세 가지가 가격을 끌어올린다. 첫째는 희소성이다. 평년에도 적은 생산량인데, 1945년산은 단 600병뿐이다. 둘째는 역사성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해, 그리고 포도밭 교체 직전의 마지막 수확이라는 이야기 자체가 이미 수집가 시장에서 독보적 서사를 만든다. 셋째는 출처와 상태다. 오래된 초희귀 와인은 보관 이력과 진위, 병 상태가 가격의 상당 부분을 좌우하는데, 경매사는 바로 그 신뢰를 판다. 결국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역사 한 조각의 소유권을 사기 위해 돈을 낸다. 이런 맥락에서 12억3000만원은 술값이라기보다 희소한 문화재급 사치재의 가격표에 가깝다.


홈페이지에 공지된 경매 기록 = 에커와인 제공와인 시장이 침체라는데 왜 이런 기록이 나오나

더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기록이 전체 와인 시장이 무조건 뜨겁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디캔터와 리브엑스에 따르면 최근 고급 와인 시장은 팬데믹 이후 과열이 꺾인 뒤 조정 국면을 거쳤지만, 최상위 블루칩 부르고뉴는 여전히 강한 상징성과 거래력을 유지하고 있다. 2026년 1월 리브엑스는 부르고뉴가 한 주간 전체 거래금액의 37.1%를 차지했다고 전했고, 디캔터는 소더비의 2025년 와인·스피릿 총매출이 1억2750만달러(약 1930억원)를 기록하며 상위 수집 시장의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 전체가 부진해도, 꼭대기 자산은 오히려 더 강해지는 ‘양극화’가 와인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마시는 사치’에서 ‘보관하는 자산’으로 바뀐 와인

초고가 와인은 이제 음식문화 기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미술품, 시계, 희귀 위스키와 비슷한 방식으로 거래되는 대체자산의 성격을 띠고 있다. 실제로 소더비는 로마네 콩티를 포함한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와인들이 수집가들 사이에서 높은 위상을 유지하는 이유로 극소 생산량, 장기 숙성 잠재력, 일관된 명성, 강한 2차 시장 수요를 꼽는다. 이번 1945년산 낙찰가는 그런 흐름이 어디까지 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최고급 와인은 식탁 위에 오르기보다 금고와 전문 보관고에 먼저 들어가는 시대다.


한 병의 와인이 보여준 사치의 끝

12억3000만원짜리 와인은 현실감이 없는 숫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낙찰가는 한 가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오늘날 초고가 사치재 시장에서 사람들은 물건 자체보다도, 다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시간과 서사, 그리고 남들보다 먼저 차지했다는 상징을 산다는 사실이다. 로마네 콩티 1945는 좋은 와인이라서 비싼 것이 아니다. 너무 적게 남았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갖고 싶어 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비싸다. 그래서 그 병의 가격표는 술값이 아니라 욕망의 시세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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