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 네타냐후 공식 SNS중동 정세가 다시 불길하게 흔들리고 있다. 2026년 4월 들어 미국과 이란이 조건부 2주 휴전에 들어갔지만,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이어갔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다시 제기된다. 특히 최근 보도들을 종합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오랫동안 미국의 대이란 강경 행동을 설득해 왔고, 이번 전쟁 국면에서도 그 영향력이 निर्ण정적이었다는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다만 이 질문은 감정적 규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전쟁에 집착하는가”라는 물음의 답은, 안보 전략과 국내 정치, 네타냐후 개인의 사법 리스크, 그리고 전쟁을 통해 권력을 연장하려는 유혹이 서로 겹쳐 있는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국가 안보 논리와 지도자의 정치 생존 본능이 결합할 때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이번 전쟁의 출발점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네타냐후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계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나는 역대 미국 행정부들에 단호한 행동을 취하라고 설득해 왔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했다”고 직접 말했다. 또 로이터는 별도 보도에서 트럼프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제거를 포함한 대이란 작전을 승인하기 전, 네타냐후와의 핵심 통화가 결정적 계기였다고 전했다. 즉, “전쟁을 누가 원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적어도 최근 보도들은 네타냐후가 단순 동조자가 아니라 적극적 촉진자였음을 시사한다.
물론 이것이 “미국이 전적으로 이스라엘에 끌려갔다”는 뜻은 아니다. 트럼프는 오히려 “이스라엘이 미국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스라엘의 손을 먼저 움직이게 했을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표현은, 이번 전쟁이 이스라엘의 일방 강요로만 시작됐다기보다, 트럼프의 선택과 네타냐후의 오랜 설득이 맞물리며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네타냐후가 그 긴장을 완화하는 쪽이 아니라 확대하는 쪽에서 일관되게 움직여 왔다는 사실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공유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맹을 상징하는 그림 = 네타냐후 공식 SNS
2026년 4월 7일과 8일, 미국과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 문제와 추가 협상을 전제로 한 2주 조건부 휴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바로 그 직후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전쟁 개시 이후 가장 강한 수준의 공습을 퍼부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이 휴전 하에서 북부 이스라엘과 레바논 내 이스라엘군에 대한 공격을 멈췄지만, 이스라엘은 공세를 더 강화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번 휴전은 이란에만 적용되며 레바논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파키스탄 총리는 레바논도 휴전 범위에 포함된다는 취지로 설명해 혼선이 빚어졌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휴전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라는 법적·외교적 해석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장을 분절해 하나를 멈추더라도 다른 전선은 계속 타오르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란과의 직접 충돌이 잠시 멈춰도, 헤즈볼라를 겨냥한 레바논 전선이 살아 있는 한 중동 전체는 사실상 전쟁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국제사회가 문제 삼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휴전의 문언을 좁게 해석해 군사행동을 이어가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국내외에 발신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첫째는 구조적인 안보 논리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이란과 헤즈볼라를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핵심 적으로 간주해 왔다. 따라서 이스라엘 안보 엘리트의 시각에서 전쟁은 “불필요한 모험”이 아니라 “나중에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선제적 압박”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이번 휴전 국면에서도 미국으로부터 이란의 핵·미사일·테러 역량을 계속 무력화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둘째는 전쟁의 목표가 군사적으로 명확히 종결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다. 로이터는 3월 보도에서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이번 전쟁이 이란 정권 붕괴로 이어질지 확신이 없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결정적 승리”의 기준은 높고, 현실의 성과는 불확실하다. 이런 전쟁은 본질적으로 길어지기 쉽다. 적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선언을 하기는 어렵지만, 위협이 남아 있다는 명분으로 군사작전은 계속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네타냐후 개인의 정치적 필요다. 그는 현재 장기 부패 재판을 받고 있고, 2025년 말에는 대통령 사면까지 공식 요청했다. 로이터는 또 2026년 3월, 네타냐후가 조기 총선을 피하려 하고 있으며 전쟁이 여론조사에서 결정적 반등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즉, 전쟁이 반드시 그를 더 강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정치 일정을 늦추고 “재판받는 피고인”이 아니라 “전시 총리”로 자신을 재포지셔닝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평시라면 사법 리스크와 정치 책임이 전면에 서지만, 전시에는 안보와 단결이 그 위를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공습 = 네타냐후 공식 SNS
정치 지도자에게 전쟁은 때때로 승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간 연장을 위한 장치가 된다. 지금 네타냐후에게 가장 큰 문제는 전쟁을 끝내는 순간 시작될 수 있는 정치적 청구서다. 왜 이 전쟁이 여기까지 왔는지, 피해는 무엇인지, 왜 외교적 출구를 더 일찍 찾지 못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사법 문제와 국가 운명이 얼마나 뒤섞였는지가 본격적으로 추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네타냐후에게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임”이라기보다, “끝나지 않아야 유리한 국면”일 가능성이 있다. 이 대목이 바로 중동 안팎에서 제기되는 가장 날카로운 의심이다.
다만 여기서도 주의할 점은, 이 모든 것을 네타냐후 한 사람의 심리로 환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강경 노선은 그 개인만의 산물이 아니라, 이란과 헤즈볼라를 실존적 위협으로 보는 군·정보기관, 우파 연정, 그리고 반복된 안보 위기 속에서 형성된 사회 분위기와도 연결돼 있다. 네타냐후는 그 흐름을 이용하는 정치인이지만, 동시에 그 흐름 위에서 힘을 얻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전쟁에 집착한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보다 정확히는, 이스라엘의 안보국가 구조와 네타냐후의 정치생존 전략이 서로를 강화하고 있다는 쪽이 현실에 가깝다.
결국 “이란 전쟁의 진정한 악의 축은 이스라엘인가”라는 질문은 강렬하지만, 분석적으로는 조금 더 정교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 문제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전체를 단일한 악으로 규정하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네타냐후 정부가 안보 위협을 근거로 군사행동을 지속하면서, 그 전쟁이 정치적으로도 자신에게 유리한 시간을 벌어준다는 점이다. 최근의 휴전 혼선과 레바논 공습 지속은, 전쟁을 멈추기보다 전선을 관리하며 이어가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지금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은 안보를 위해 싸우는 것인가, 아니면 안보를 명분으로 끝나지 않는 전쟁을 정치화하고 있는 것인가. 최근까지 확인된 사실들만 놓고 보면, 네타냐후 정권은 적어도 그 두 번째 의심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를 향한 장기적 설득, 휴전 국면에서도 꺼지지 않는 레바논 전선, 사법 리스크와 조기 총선 압박 속에서 이어지는 전시 리더십의 연출은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전쟁은 지금, 중동의 질서를 둘러싼 충돌인 동시에 네타냐후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