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tvN ‘꽃보다 할배’ 공식 홈페이지 캡처
2025년 11월 25일, 세대의 벽을 넘어 사랑받아 온 배우 이순재가 우리 곁을 조용히 떠났다. 향년 91세. 한국 연극과 방송의 역사만큼이나 길었던 그의 삶은, 한 사람의 연기 인생을 넘어 한 시대의 문화와 기억을 관통하는 거대한 서사였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긴 수많은 장면들을 다시 돌아보며, “우리의 영원한 꽃할배”라는 호칭이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과 분단의 시대를 건너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무대에 처음 오른 그날부터 “배우로 살아야만 한다”는 그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 후로 70년 가까운 세월, 그는 무대를 떠난 적이 없었다.
TV 드라마가 막 태동하던 시기 그는 1962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 출연하며 브라운관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작품은 이순재라는 이름을 대중 앞에 처음 내놓은 출발점이었다. 이어 수많은 시대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그는 매번 전혀 다른 얼굴로 시청자들 앞에 등장했다.
그의 진정한 대중 연기자로서의 반열은 1991~92년 국민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이병호—일명 ‘대발이 아버지’—를 연기하며 결정적으로 굳어졌다. 거칠지만 따뜻한 한국식 아버지의 초상이 그의 연기를 통해 살아났고, 이 작품은 그를 명실상부한 ‘국민배우’로 자리매김시켰다. 이후에도 <허준>, <상도>, <이산> 등에서 사극의 묵직한 무게를 담아냈고,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젊은 세대에게까지 사랑받는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그의 커리어는 드라마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3년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권위 대신 인간적이고 유머 넘치는 모습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이순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친근한 꽃할배”, “직진 순재”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으며, 예능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의 마음까지 품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젊어졌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정치권에서도 그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역할에 나섰고,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끝내 ‘배우’였다. 한 순간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고, 작품을 멈추지 않았다. 2024년 드라마 <개소리>에서 ‘기동의 아버지’로 출연한 것이 그의 마지막 브라운관 작품이 되었다. 생애 말년에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오르며 마지막까지 관객과 마주하려 했다. 그는 생의 끝까지 ‘현역 배우’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를 떠나보낸 뒤에야 깨닫는다.
이순재라는 이름은 한 명의 배우가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가 걸어온 길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그의 연기는 시대와 함께 늙지 않았고, 역할 하나하나가 한 세대의 감정과 풍경을 담아냈다.
그는 단순히 많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기억하는 ‘아버지’, ‘스승’, ‘선배’, 그리고 ‘꽃할배’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영원한 꽃할배, 이순재.
그가 남긴 장면들은 이제 우리의 기억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 숨 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