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의 생산 현장 투입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는 신기술 로봇 단 1대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취지로 공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로봇 투입이 “고용 충격”을 가져올 수 있고, 회사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자동화를 밀어붙일 가능성을 경고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을 2028년부터 생산라인에 도입하는 구상을 언급해 왔고, 미국 조지아 공장 등 해외 생산 확대 전략과도 맞물려 노사 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민감한 지점은 ‘도입의 속도’다.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를 미래 성장축으로 밀고 있고, 로봇 상용화의 시간표를 반복적으로 언급해왔다. 시장이 불안해하는 건 “로봇이 올까”가 아니라 “누가 먼저 학습곡선을 타고 원가를 내리느냐”다.
이때 노조의 ‘0대 원칙’이 길어지면, 회사는 기술 도입 자체보다 도입 지연이 만드는 비용을 떠안게 된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가격 경쟁력, 물량, 고용 안정으로 되돌아온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겹쳐 보이는 과거 사례가 있다. 1865년 영국의 ‘기관차량법(Locomotives Act 1865)’, 일명 ‘빨간 깃발법(Red Flag Act)’이다. 법은 기계식 차량이 도로를 달릴 때 도시 2mph, 시골 4mph로 속도를 제한했고,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약 60야드 앞에서 걸어가며 경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자동차를 금지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자동차를 걷게 만든 규칙”이었다.
그런데 이 법은 단순한 안전 규정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당시 마차·역마차(스테이지코치) 등 기존 운송업 이해관계가 ‘자동차의 파괴력’을 두려워하며 로비를 통해 강력한 규제를 밀어붙인 결과였다. 즉 “공공의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기존 생태계가 신기술의 확산 속도를 늦추는 방향으로 제도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의 행동이 빨간 깃발법과 닮아 보이는 지점은 여기다. 둘 다 “완전 금지”가 아니라, 현장 진입의 문턱을 높여 속도를 통제한다.
빨간 깃발법은 자동차가 도로에 “들어오긴 들어오되”, 그 앞에 사람이 걸어가게 만들어 자동차의 강점을 상쇄했다. 현대차 노조의 “합의 없인 1대도 못 들어온다”는 메시지도 로봇을 영원히 금지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노사 합의라는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에는 한 발도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방식이다.
이 구조가 위험한 이유는, 기술 전환기에 속도를 늦추는 장치가 의도와 다르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빨간 깃발법이 “기술을 불법화”하지 않아도 산업의 시간을 빼앗았던 것처럼, 로봇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더라도 현장에서 계속 미뤄지면 경쟁력이 깎이는 시간이 누적된다.

다만 이 비유를 그대로 “노조=담합”으로 몰아가면 논점이 흐려진다. 빨간 깃발법은 특정 집단 하나가 만든 단순한 음모라기보다, 당대의 이해관계(기존 운송업·사회적 불안·안전 논리)가 결합된 결과라는 설명이 더 정확하다.
현대차 노조의 문제제기에는 실제로 전환기 노동자들이 겪을 수 있는 고용 불안이 들어 있다. 중요한 건 “반대냐 찬성이냐”가 아니라, 로봇 도입이 고용 축소로 직결되지 않도록 설계를 요구하는 것이 협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설계가 없으면 갈등은 길어지고, 길어진 갈등은 다시 회사의 가격 경쟁력과 물량을 압박해 고용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현대차가 피해야 할 결말은 “로봇을 막아서 지키는 고용”이 아니라, “막는 동안 경쟁력이 약화돼 무너지는 고용”이다. 로봇 도입을 막느냐 푸느냐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조건을 합의문으로 못 박아 ‘불신 비용’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 된다.
로봇 투입 직무 범위와 단계별 일정의 투명화, 전환배치·재교육의 권리와 기간 중 임금 보전, 로봇 운영·정비·데이터 관련 신규 직무의 내부 전환 우선권, 생산성 향상분이 고용 안정과 임금 체계에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규칙 등이 필요하다.
영국의 빨간 깃발법이 상징하는 건 “기술을 아예 막지 않아도, 문턱을 높이면 산업은 멈춘다”는 교훈이다. 현대차의 로봇 논쟁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 로봇을 ‘깃발 든 사람’처럼 느리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전환 협약’으로 빠르되 안전하게 들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