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관세를 협상 카드로 꺼내들면서, 각국은 수출 의존을 줄이고 공급망을 재배치하는 쪽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관세 인상·유예 같은 조치가 반복되자 기업은 시장과 생산기지를 분산하고, 정부는 “새 파트너 찾기”를 통상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올렸다.
가장 눈에 띄는 축은 유럽연합(EU)이다. EU는 1월 27일 인도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사실상 타결하며 “거의 모든 상품”을 폭넓게 낮추는 쪽으로 합의했고, 관세 장벽이 높던 인도 시장을 장기적으로 열어젖히는 그림을 그렸다.
동시에 EU는 1월 9일 회원국 승인 절차를 거쳐, 1월 17일 남미 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25년 숙원의 협정을 서명(비준 대기) 까지 밀어붙였다. EU가 “미국 관세 충격을 상쇄하고, 특정 국가 의존을 줄이기 위한 카드”로 이 딜을 밀었다는 해석이 유럽 안팎에서 나온다.
아시아에선 “블록끼리 묶는 방식”이 더 선명해졌다. 중국과 아세안(ASEAN)은 디지털·그린 경제 등을 포괄하는 자유무역협정 업그레이드에 합의했고, 미·중 갈등이 길어질수록 역내 결속을 키우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은 1월 29일 EU와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하며, 미국 관세로 흔들리는 무역 환경 속에서 “대미 의존을 줄이는 포석”을 깔았다.

중동(걸프)도 새 판짜기에 들어갔다. EU는 UAE와 FTA 협상 개시를 공식화하며, 재생에너지·핵심 원자재·첨단 제조까지 묶는 ‘전략형 통상’을 꾀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아세안과 걸프 국가들을 한 테이블로 묶는 정상급 협력 구도를 키우며, 관세 충격을 “거대한 대체 시장 네트워크”로 흡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관세 전쟁이 길어지면서, 무역의 결제 인프라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도 함께 커졌다. 브릭스(BRICS)에서는 ‘단일 통화’보다 실무형 결제 시스템(예: 각국 디지털 통화의 연동) 논의가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제재·달러 의존 리스크”를 줄이려는 방향성 자체가 시장의 주목 포인트다.
이번 흐름을 한 줄로 정리하면, 미국 관세가 ‘보복 관세’만 부른 게 아니라 ‘새 동맹·새 시장·새 결제선’까지 자극했다는 것이다. EU는 인도·남미·중동으로 거래망을 넓히고, 아시아는 역내 통합과 블록 연계를 강화하며, 신흥국은 결제 인프라까지 손보려 한다.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는 “미국이 중심인 단일 궤도”에서 “여러 궤도가 병렬로 도는 지도”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