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80주년을 맞은 올해, 시민 1만여 명이 모여 ‘12·3 비상계엄’ 피해를 주장하며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그리고 당시 계엄 책임자들이다. 대규모 시민이 참여한 집단 소송은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서 국가 권력 남용에 대한 법적 책임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2025년 8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 시민단체와 변호인단이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1만 1,000여 명의 시민이 원고로 참여한 손해배상 소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2023년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 조치로 인해 집회·언론의 자유, 생업 활동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와 주요 책임자들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번 집단 소송은 단순한 개인적 손해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위협한 국가 권력에 대한 사회적 심판 성격을 갖고 있다.
당시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학계와 시민사회는 이를 “사실상 정치적 목적의 조치”라고 비판해왔다. 계엄령 하에서 군이 직접 치안 업무에 개입했고, 언론 보도가 검열되며 SNS 게시물이 차단되기도 했다. 전국 곳곳에서 예정된 집회와 시위가 강제 해산됐고, 일부 시민들은 부당한 체포와 구금 피해를 호소했다. 특히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은 “영업 활동이 중단돼 생계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에 참여했다.
이번 소송은 원고 수만으로도 주목을 끈다. 기존의 국가 상대 소송은 보통 수십~수백 명 단위였으나, 1만 명 이상이 동시에 참여한 것은 전례 없는 규모다. 시민단체 측은 “국가 권력이 헌법적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며, “이는 단순한 보상 요구를 넘어 민주주의의 최소한을 지키려는 시민적 연대”라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개별 피해를 금전적으로 산정하기보다는, 정신적 손해와 기본권 침해에 대한 상징적 배상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소송 대상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이름이 포함됐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와 유지 결정의 최종 책임자라는 이유에서, 김 여사는 당시 정치적 영향력과 국정 개입 의혹을 이유로 지목됐다. 또한 계엄령 집행을 주도한 군 지휘부도 공동 피고에 포함되었다. 법조계에서는 “개인적 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핵심 쟁점”이라며, “대통령 개인을 상대로 한 소송이 법원에서 어떻게 다뤄질지는 전례가 많지 않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이번 소송은 광복 80주년과 맞물리며 그 의미가 더욱 확대됐다. 광복절은 일제의 폭압에서 벗어난 날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기념일이다. 바로 이 시점에 비상계엄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모은 것은, 과거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청산하고 현재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행위로 해석된다. 역사학자들은 “광복절에 맞춰 제기된 소송은 단순한 법적 절차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방향성을 묻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분석한다.
앞으로 소송은 장기전이 될 전망이다. 피고 측은 ‘계엄은 합헌적 조치였으며, 국가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원고 측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침해를 강조하며, 군의 정치 개입과 언론 검열 사례를 증거로 제출할 계획이다. 소송 과정에서 국가 배상 범위, 책임 주체, 피해 입증 방식 등이 치열하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법원이 시민 1만여 명의 참여를 어떻게 다루고, 집단적 피해를 인정할지 여부가 판결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법학자들은 이번 재판이 한국 민주주의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 국가 권력이 위기 상황을 이유로 기본권을 제한했을 때, 사후적으로 어떤 법적 책임을 지는지가 앞으로의 기준을 정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이 소송은 과거를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