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15년 만에 카카오톡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개편안을 발표했다. 오늘(23일) 경기도 용인 카카오 AI 캠퍼스에서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 ‘이프 카카오(if(kakao)25)’에서 공개된 이번 개편은 단순한 메시지 앱을 넘어, 인공지능(AI)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 생활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선언한 것으로 평가된다.
카카오 측은 이번 개편의 목적을 명확히 했다. 사용자들의 일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카카오톡 안에서 보내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카카오톡은 친구와의 대화, 그룹 채팅, 간단한 콘텐츠 공유 중심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위에 검색, 쇼핑, 예약, 콘텐츠 소비 등 생활 전반이 얹힌다. 이른바 ‘슈퍼 앱’ 전략이다. 카카오는 이번 변화를 통해 카카오톡을 단순한 대화창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를 담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AI다. 이번 개편안에서는 오픈AI의 챗GPT가 카카오톡 내부에 직접 들어온다.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이나 웹 접속이 필요 없다. 채팅창 상단에 마련된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챗GPT와 대화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대화 중 궁금한 것을 물어보거나,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
카카오 자체 AI 모델 ‘카나나’도 강화된다. ‘카나나 인 카카오톡’이라는 베타 서비스는 단순히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대화 맥락을 읽고 필요한 순간 먼저 말을 거는 ‘선톡’ 기능을 탑재한다. 이를테면 친구와 약속 이야기를 나누면 카나나가 먼저 캘린더 예약을 제안하거나, 맛집 정보를 자동으로 띄워주는 식이다. 대화의 연속선상에서 서비스가 따라붙는 구조다.
메신저 중심이었던 카카오톡은 이제 SNS의 성격을 본격적으로 품는다. 친구탭은 기존의 단순한 이름 목록에서 벗어나 ‘피드형 프로필’ 구조로 바뀐다. 친구들이 올린 사진, 영상, 글이 하단 피드에 자동으로 모이고, 지인의 근황이나 프로필 업데이트가 타임라인 형태로 노출된다. 기존의 ‘프로필 사진 교체’ 중심이었던 카카오톡이 이제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유사한 피드 경험을 제공하는 셈이다.
세 번째 탭에는 ‘지금탭’이라는 이름의 숏폼 콘텐츠 공간이 생긴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처럼 짧은 동영상을 소비할 수 있고, 오픈채팅 커뮤니티와도 연계된다. 대화를 나누던 주제와 관련된 숏폼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본래의 강점인 채팅 기능도 단단히 다듬었다. 먼저 채팅방 폴더 기능이 추가된다. 사용자는 대화방을 친구, 업무, 취미 등으로 분류해 관리할 수 있고, ‘안 읽은 메시지만 모아보기’ 같은 실용적 기능도 새로 생긴다.
또한 메시지 수정 기능이 확대된다. 이미 보낸 메시지를 일정 시간 내에 고칠 수 있으며, 일반 채팅과 오픈채팅 모두에서 적용된다. 실수로 잘못 보낸 메시지 때문에 난감했던 상황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보이스톡 기능도 업그레이드된다. 음성 통화를 녹음하고,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 요약하는 기능이 추가된다. 사용자는 통화가 끝난 뒤 긴 대화를 다시 들을 필요 없이 핵심만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능은 특히 업무용으로 유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카오는 이번 개편을 통해 사용자 체류 시간을 크게 늘리겠다고 밝혔다. AI와 SNS 기능이 결합하면 대화와 콘텐츠 소비가 유기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앱 사용 시간이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카카오는 체류 시간을 20% 이상 늘리고, 올해 4분기 광고 매출을 전년 대비 10%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메신저 기반의 생활 플랫폼이라는 카카오톡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수익화 모델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광고, 쇼핑, 커머스, 콘텐츠 매출이 모두 이번 개편과 직결될 수 있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도 뒤따른다. 우선 지나치게 많은 기능이 들어가면서 사용성이 복잡해질 수 있다. 특히 숏폼, 피드, 친구 피드 같은 SNS 기능이 늘어나면 카카오톡 고유의 ‘단순함’이 희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걱정도 있다. AI가 대화 맥락을 읽고 서비스를 제안하려면 대화 내용을 일정 부분 처리해야 한다. 카카오는 “카카오톡 대화 데이터는 챗GPT 학습에 활용되지 않고 서버에도 저장되지 않는다”고 강조했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신뢰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한 수익화 측면에서 당장 효과가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 숏폼과 피드 기능은 이미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들이 선점한 영역이다. 카카오톡만의 차별성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사용자들의 반응이 기대보다 낮을 수 있다.
이번 개편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챗GPT 기능은 10월부터 카카오톡에 적용될 예정이다. ‘카나나 인 카카오톡’ 베타 서비스도 같은 달 중순 시작된다. 카카오는 AI 기능을 ‘온디바이스 방식’, 즉 사용자의 스마트폰 내부에서 처리하는 방법으로 구현해 프라이버시 문제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SNS 피드와 숏폼 콘텐츠 기능은 내년 상반기까지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된다. 채팅방 폴더, 메시지 수정, 보이스톡 텍스트 변환 등은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될 계획이다.
결국 이번 카카오톡 개편의 핵심은 ‘대화에서 일상으로’다. 과거 카카오톡이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공간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안에서 약속을 잡고, 음식을 예약하고, 쇼핑을 하고, 동영상을 보고, AI와 대화까지 나누는 ‘올인원 플랫폼’이 된다.
카카오톡의 진화는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생활 보호·서비스 중복·플랫폼 피로감 같은 숙제를 안고 있다. 이번 변화가 한국인의 일상에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지, 그리고 사용자들이 이 거대한 변화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는 앞으로의 시간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