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은 단순히 외모의 문제가 아니다.
탈모를 겪는 사람 대부분은 자존감의 흔들림과 심리적 위축을 경험한다.
사회적 시선, 외모 스트레스, 자신감 저하가 겹치면서 우울감이 깊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다시 나를 되찾기 위해” 탈모 치료제를 찾는다.
하지만 최근 여러 연구와 규제기관 경고가 제기한 질문은 아이러니하다.
“탈모로 우울한데, 치료하려 하면 또 우울해진다고?”
국내외 연구는 탈모가 단순히 미용상의 고민을 넘는 정신건강 이슈임을 보여준다.
영국의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탈모 진단 후 1년 이내에 우울·불안 증상이 새로 생길 확률이 일반인보다 30% 이상 높았다.
원형 탈모 환자의 경우 자살 시도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탈모 자체가 이미 심리적 상처이자 위험 요인인 셈이다.
이런 심리적 부담을 덜기 위해 선택하는 약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약이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다.
남성형 탈모를 억제하는 대표적인 5-알파 환원효소 억제제 계열 약물이다.
2020년 JAMA Dermatology에 실린 연구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약물 부작용 데이터베이스(VigiBase)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45세 이하 탈모 환자 중 피나스테리드 복용자에게서 우울증, 불안, 자살 생각 보고가 통계적으로 더 많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진은 “젊은 남성 탈모 환자에서 정신적 이상 반응의 신호가 확인됐다”고 결론지었지만, 자발 보고 기반 연구의 한계상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단순한 연구 결과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2년 피나스테리드(상품명 프로페시아) 제품 라벨에 ‘자살 생각 및 행동(suicidal ideation and behavior)’을 공식 부작용 항목으로 추가하도록 지시했다.
또 올해(2025년)에는 병원 조제용 국소 피나스테리드 제품에도 같은 안전 경고를 내렸다.
유럽의약청(EMA)도 같은 해 5월, 피나스테리드 1mg·5mg 제품에 ‘자살 생각’을 이상 반응으로 명시하고, 모든 복용자에게 경고 카드 제공을 의무화했다.
영국 의약청(MHRA) 또한 우울감·성기능 저하와 함께 정신적 부작용을 경고하며 2024년부터 환자 알림카드를 배포 중이다.
즉,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각국 규제기관은 ‘위험 신호가 존재한다’고 보고 예방적 조치를 취한 상태다.
하지만 모든 연구가 같은 결론을 내린 건 아니다.
최근 발표된 2024년 메타분석(200만 명 이상 대상)은 “피나스테리드나 두타스테리드 같은 5-알파 환원효소 억제제가 우울증이나 자살 위험을 높인다는 뚜렷한 근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일부 학자들은 “약물 부작용보다는 탈모 자체가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주는 것이 핵심 요인일 수 있다”고 본다.
결국 ‘탈모가 우울을 부르고, 약이 그 우울을 악화시킨다’는 단순한 선형 관계보다는, 탈모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와 약물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뜻이다.
현재 의학계가 내리는 공통된 조언은 명확하다.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하더라도, 정신건강 상태를 함께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피부과학회는 탈모 치료 환자에게 정기적인 우울감·불면·불안 검진을 권고하고, 이상 신호가 나타나면 즉시 복용을 중단하거나 대체 요법을 고려하라고 제안한다.
약물에 대한 과도한 공포도 문제지만, 무심함은 더 위험하다.
피로감이 심해지거나 무기력·불면·짜증이 잦아지는 등 기분 변화가 지속될 경우, 단순 스트레스로 넘기지 말고 전문의 상담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탈모는 단지 머리카락이 빠지는 현상이 아니라, 사람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흔들리는 경험이다.
치료제 하나에 모든 기대를 걸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약은 증상을 억제할 수 있지만, 진짜 회복은 스스로의 마음을 챙길 때 시작된다.
결국 탈모 치료의 목적은 머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