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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 전 북유럽 소녀는 어떻게 생겼을까?... 만년전 껌에서 발견된 DNA로 복원
  • 이시한 기자
  • 등록 2025-11-24 09:06:46
  • 수정 2025-11-25 16: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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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작나무 타르, 석기시대 버전 ‘껌’이었다
  • 치아 자국이 먼저 말해준 “누군가 씹었다”는 증거
  • 침 흔적에서 추출한 놀라운 고대 DNA

"껌 씹던 석기시대 10대 소녀"…에스토니아서 1만500년 전 흔적 발견

에스토니아에서 1만500년 전 석기시대 10대 소녀가 씹었던 것으로 보이는 ‘선사시대 껌’이 발견됐다.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만든 타르 조각에 치아 자국과 침이 남아 있었고, 여기에 남은 DNA를 분석한 결과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을 가진 소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연구진의 이번 성과는 영국 <가디언>, <타임스> 등 외신을 통해서도 자세히 소개됐다.


Archaeology News 

자작나무 타르에 남은 이빨 자국과 침

이번에 분석된 유물은 에스토니아 한 고고학 유적에서 나온 자작나무 타르 덩어리다. 타르투대 역사·고고학연구소는 이 물질에서 뚜렷한 치아 자국과 침의 흔적을 확인했고, 이를 ‘석기시대 사람들이 씹던 일종의 껌’으로 해석했다.

자작나무 타르는 자작나무 껍질을 불에 달궈 얻는 끈끈한 검은색 수지로, 고대에는 돌도구 손잡이를 고정하는 접착제이자 그릇을 메우는 방수재로 쓰였다. 동시에 입에 넣고 씹는 습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연구진은 “치통 완화, 입 냄새 제거, 작업 중 심심풀이 등 여러 용도로 씹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DNA가 밝혀준 ‘10대 소녀’의 얼굴

타르에 남은 침에서 추출한 고대 DNA 분석 결과, 이 타르는 1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의 소녀가 씹은 것으로 추정됐다. 타르투대 유전체연구소는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을 가진 개체였다는 점까지 밝혀냈다.

연구에 자문한 역사학자 베타니 휴스는 “우리가 북유럽 초기 인구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금발·파란 눈’ 이미지와는 다른 결과”라며 “당시 북유럽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통념을 흔드는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타르투대 쪽은 현대 에스토니아 인구 약 20퍼센트의 DNA 샘플을 보유하고 있어, 이 현대 데이터베이스를 기준으로 고대 DNA를 비교·해석한 점도 이번 연구의 강점으로 꼽힌다.


‘던져버린 껌 한 조각’이 보여주는 석기시대의 일상

이번 발견은 영국 채널4 다큐멘터리 ‘히든 에스토니아: 불과 얼음의 땅(Treasures of the World – Hidden Estonia: Land of Fire and Ice)’을 통해 처음 소개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프로그램에서는 이 ‘석기시대 껌’과 함께, 중세 에스토니아인의 종교관을 보여주는 800년 된 성·다산 상징 십자가, 비옥을 상징하는 알을 안고 묻힌 12세기 여성 ‘쿠크루세 레이디’ 등 다른 유물들도 함께 다뤄졌다.

고고학자들은 “버려진 작은 타르 조각이 당시 사람들의 통증, 위생, 놀이, 노동 방식을 한꺼번에 비춰주는 창문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손도끼를 고치거나 그릇을 메우는 일을 하던 중 입에 타르를 물고 있다가, 다 쓰고 난 뒤 툭 뱉어버린 조각이 수천 년 동안 진흙 속에 묻혀 보존됐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의 유전자와 일상의 흔적이 되살아난 셈이다.


Archaeology News 

외국 언론이 주목한 ‘석기시대 껌’ 연구의 흐름

에스토니아 발견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이른바 ‘고대 껌 DNA 연구’의 최신 사례이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덴마크 등지에서도 이미 자작나무 타르를 씹은 흔적에서 고대인의 유전체와 식단, 구강 미생물 정보를 복원한 연구들이 이어져 왔다.

2019년에는 덴마크 실톨름에서 나온 자작나무 타르에서 5,700년 전 여성의 전체 유전체와 구강 미생물이 복원돼 화제가 됐다. 또 스웨덴 후세비 클레브에서 나온 약 1만 년 전 타르 조각에서는 세 명의 청소년(두 여성, 한 남성)의 DNA가 확인돼 스칸디나비아 최초 정착민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자료가 됐다.

2024년에는 스웨덴 10대들이 씹은 타르에서 송어·헤이즐넛 등의 DNA가 검출돼 석기시대 북유럽 청소년들의 식단과 구강 건강 상태를 추적한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처럼 ‘껌 한 조각’은 이제 인류학·고고학·유전체학이 만나는 최전선 연구 소재가 됐다. 뼈나 치아가 남지 않은 유적에서도 사람의 존재와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찰나의 씹기, 영원의 기록

이번 에스토니아 사례는 “우연히 씹고 버린 한 조각의 타르가, 수만 년 뒤 인류의 과거를 말해주는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석기시대 10대 소녀가 잠깐 치통을 달래려고, 혹은 지루함을 달래려고 씹었을지도 모를 그 순간이, 1만 년이 지나 우리의 과학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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