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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합의 없인 로봇 1대도 못 들어온다”…현대차 노조 제동, 글로벌 경쟁은 기다려주나
  • 우경호 커리어 전문기자
  • 등록 2026-01-23 11: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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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의 없인 1대도 못 들어온다”…로봇 도입을 둘러싼 노사 충돌
  • 테슬라가 앞당기는 ‘로봇-공장’…지연 비용이 가격표로 돌아온다
  • 영국 ‘빨간 깃발법’의 교훈…기술을 느리게 만들면 산업의 시간이 사라진다


“노사 합의 없인 1대도 못 들어온다”…현대차 노조의 ‘아틀라스’ 제동

현대자동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의 생산 현장 투입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는 신기술 로봇 단 1대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취지로 공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로봇 투입이 “고용 충격”을 가져올 수 있고, 회사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자동화를 밀어붙일 가능성을 경고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을 2028년부터 생산라인에 도입하는 구상을 언급해 왔고, 미국 조지아 공장 등 해외 생산 확대 전략과도 맞물려 노사 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테슬라는 ‘옵티머스’ 시계를 앞당긴다…자동화 경쟁은 “기술”보다 “속도”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민감한 지점은 ‘도입의 속도’다.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를 미래 성장축으로 밀고 있고, 로봇 상용화의 시간표를 반복적으로 언급해왔다. 시장이 불안해하는 건 “로봇이 올까”가 아니라 “누가 먼저 학습곡선을 타고 원가를 내리느냐”다.

이때 노조의 ‘0대 원칙’이 길어지면, 회사는 기술 도입 자체보다 도입 지연이 만드는 비용을 떠안게 된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가격 경쟁력, 물량, 고용 안정으로 되돌아온다.



영국 ‘빨간 깃발법’이 떠오르는 이유: “자동차는 허용하되, 자동차답게 못 달리게 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겹쳐 보이는 과거 사례가 있다. 1865년 영국의 ‘기관차량법(Locomotives Act 1865)’, 일명 ‘빨간 깃발법(Red Flag Act)’이다. 법은 기계식 차량이 도로를 달릴 때 도시 2mph, 시골 4mph로 속도를 제한했고,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약 60야드 앞에서 걸어가며 경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자동차를 금지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자동차를 걷게 만든 규칙”이었다.

그런데 이 법은 단순한 안전 규정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당시 마차·역마차(스테이지코치) 등 기존 운송업 이해관계가 ‘자동차의 파괴력’을 두려워하며 로비를 통해 강력한 규제를 밀어붙인 결과였다.  즉 “공공의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기존 생태계가 신기술의 확산 속도를 늦추는 방향으로 제도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 ‘아틀라스 반대’와 ‘빨간 깃발법’의 공통점: 금지가 아니라 ‘문턱’이다

현대차 노조의 행동이 빨간 깃발법과 닮아 보이는 지점은 여기다. 둘 다 “완전 금지”가 아니라, 현장 진입의 문턱을 높여 속도를 통제한다.

빨간 깃발법은 자동차가 도로에 “들어오긴 들어오되”, 그 앞에 사람이 걸어가게 만들어 자동차의 강점을 상쇄했다. 현대차 노조의 “합의 없인 1대도 못 들어온다”는 메시지도 로봇을 영원히 금지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노사 합의라는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에는 한 발도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방식이다.

이 구조가 위험한 이유는, 기술 전환기에 속도를 늦추는 장치가 의도와 다르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빨간 깃발법이 “기술을 불법화”하지 않아도 산업의 시간을 빼앗았던 것처럼, 로봇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더라도 현장에서 계속 미뤄지면 경쟁력이 깎이는 시간이 누적된다.



단, ‘기득권 방어’와 ‘전환 안전망’은 구분돼야 한다

다만 이 비유를 그대로 “노조=담합”으로 몰아가면 논점이 흐려진다. 빨간 깃발법은 특정 집단 하나가 만든 단순한 음모라기보다, 당대의 이해관계(기존 운송업·사회적 불안·안전 논리)가 결합된 결과라는 설명이 더 정확하다.

현대차 노조의 문제제기에는 실제로 전환기 노동자들이 겪을 수 있는 고용 불안이 들어 있다. 중요한 건 “반대냐 찬성이냐”가 아니라, 로봇 도입이 고용 축소로 직결되지 않도록 설계를 요구하는 것이 협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설계가 없으면 갈등은 길어지고, 길어진 갈등은 다시 회사의 가격 경쟁력과 물량을 압박해 고용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빨간 깃발’을 걷어내는 방법: 로봇 도입을 ‘전환 협약’으로 잠그는 것

현대차가 피해야 할 결말은 “로봇을 막아서 지키는 고용”이 아니라, “막는 동안 경쟁력이 약화돼 무너지는 고용”이다. 로봇 도입을 막느냐 푸느냐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조건을 합의문으로 못 박아 ‘불신 비용’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 된다.

로봇 투입 직무 범위와 단계별 일정의 투명화, 전환배치·재교육의 권리와 기간 중 임금 보전, 로봇 운영·정비·데이터 관련 신규 직무의 내부 전환 우선권, 생산성 향상분이 고용 안정과 임금 체계에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규칙 등이 필요하다. 

영국의 빨간 깃발법이 상징하는 건 “기술을 아예 막지 않아도, 문턱을 높이면 산업은 멈춘다”는 교훈이다. 현대차의 로봇 논쟁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 로봇을 ‘깃발 든 사람’처럼 느리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전환 협약’으로 빠르되 안전하게 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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