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시작은 좀 가벼웠습니다.
〈흑백요리사2〉가 워낙 화제였으니까요. “그래, 이 흐름에 올라타서 빨리 한 번 읽고 리뷰해볼까” 하는 마음이 먼저였죠.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 생각이 가벼웠던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책이 정확히 그 흐름의 ‘본심’을 품고 있었다는 걸요.
〈흑백요리사2〉가 많은 사람을 울린 이유는 요리의 화려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기 일을 자기답게 붙들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리스펙, 그리고 그 삶이 가진 조용한 품위가 화면 밖으로 새어 나왔기 때문이죠. 최강록 셰프의 에세이 『요리를 한다는 것』은 그 감동의 결을 글로 옮겨놓은 책입니다. “요리 이야기”를 하는데, 읽고 있으면 자꾸 “내 얘기”가 됩니다.
최강록 셰프 이야기는 늘 ‘만화 같다’는 표현이 붙습니다. 음악을 하려다 접고, 스페인어과에 갔다가, IMF 시절을 지나 해병대를 다녀오고, 드럼을 사려 스시집에서 알바하다 만화를 읽고, 가게를 열었다 접고, 또 망하고… 그리고 〈마스터셰프 코리아2〉, 다시 〈흑백요리사2〉 우승. 딱 들으면 서사만으로도 극적이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그 “극적인 점과 점”을 잇는 선이 우리가 상상하던 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책 속의 그는 화려한 승부사가 아니라, 신중하고 소심하고, 때로는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물 들어오면 노 젓지 않고 노를 버린다”는 식의 자기 농담까지 곁들이면서요. 이게 묘하게 사람 마음을 놓이게 합니다. 대단한 사람을 멀리서 감탄하게 만들기보다, “아, 이 사람도 이렇게 흔들리는구나” 하고 가까이 오게 하거든요.

요즘은 셰프들이 예능에도 많이 나오고, 말도 재밌고, 캐릭터도 강하고, 그래서 스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강록 셰프는 그 흐름 속에서도 특이한 자리에 서 있어요. 내향적이고, 낯가리고, 주변머리가 부족한 사람이 굳이 사람 앞에 서 있는 느낌.
그래서 책에 나오는 단골 가게 만들기 노하우가 웃기면서도 찡합니다. 사장님에게 살갑게 말 붙이는 대신, 매일 같은 시간에 가게 앞에 ‘그냥 서 있다’는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오셨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관계가 시작됩니다. 말로 설득하는 시대에, 몸으로 시간을 쌓는 방식이라니. 그게 너무 최강록답습니다.
이 책이 주는 감동도 그런 방식입니다.
준비된 눈물 버튼을 누르는 책이 아니라, 일상어로 툭툭 말하다가 갑자기 가슴을 “훅” 치는 순간이 있어요. 홍보 문구가 말하는 그대로, 진지한 문장 사이에 반짝이는 유머와 손그림이 나오고, 그 덕분에 더 방심하게 되고, 방심한 틈에 어떤 문장이 조용히 들어와 오래 남습니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큰 덩어리로 보면 네 가지 키워드로 구성됩니다. 음식, 요리, 식당, 요리사.
각 파트가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는 건 단연 ‘식당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파트는 성공담이 아니라 업무일지에 가까운 현실이기 때문이에요.
소제목부터가 출근, 장보기, 재료 밑손질, 손님 맞기, 영업 시간, 마감, 퇴근… 말 그대로 직장인의 루틴입니다.
여기서 최강록 셰프는 “식당이란 낭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식당을 굴리는 데 필요한 행위 요소들을 하나씩 꺼내 놓고, 그 위에 자신의 가치관을 조용히 올려둡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더 믿게 되고, 꾸미지 않아서 더 오래 봅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독자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직업이 달라도, 루틴의 이름이 달라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과정은 닮아 있다는 걸 우리도 알고 있으니까요. 누구는 재료를 다듬고, 누구는 자료를 정리하고, 누구는 아이를 씻기고, 누구는 고객을 설득하고… 결국은 “오늘을 굴리는 일”이라는 점에서요.

〈흑백요리사2〉 마지막 미션이 “나를 위한 요리”였죠. 그런데 최강록 셰프의 요리는 스토리텔링으로 번쩍이는 요리라기보다, 하루하루 남은 재료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생활 요리에 가까웠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을 건드렸고요.
이 책도 딱 그 결입니다.
거창한 교훈을 던지지 않아요.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가 아니라, “그냥 이런 마음으로 오늘을 산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읽는 사람의 삶을 건드립니다. 우리가 원하는 위로는 종종 정답이 아니라, 같은 속도로 걷는 사람의 발소리이기도 하니까요.
최강록 셰프가 우승 소감에서 자신을 “특출 난 음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요리사들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그 문장이 많은 사람을 달래준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 책은 2025년 6월 23일 출간 정보로 확인되는데요.
그러면 방송 촬영과 시기적으로 겹쳤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는데, 책 어디에도 “우승”을 암시하는 티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게 더 최강록답게 느껴집니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말을 아끼는 방식까지도요.

〈흑백요리사2〉를 재밌게 본 분이라면, 이 책은 몰입이 더 쉽습니다. 화면에서 느낀 그 “사람의 결”이 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요리 프로그램을 안 본 분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이 책은 결국 요리에 대한 책이면서, 일에 대한 책이고, 삶에 대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루를 꾸려야 하고, 누구나 오늘을 반복해야 하고, 누구나 어제와 비슷한 내일을 다시 맞이하니까요. 그 루틴을 “견디는” 사람에게, 이 책은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직하게 정성을 다해서, 배려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한다.
성공이 보장돼서가 아니라—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