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시흥에서 하혈과 복통을 호소한 임신 31주 산모가 병원 23곳에서 수용 불가 통보를 받은 뒤, 헬기로 세종의 대학병원까지 옮겨져 치료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가 이번엔 고위험 산모에게서 재연된 셈이다.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14일 오후 9시 12분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임신부가 “하혈과 복통이 있다”며 119에 신고했다. 구급대는 약 10분 뒤 현장에 도착해 응급처치를 하며 산모 수용 가능 병원을 찾았지만, 경기·인천·서울 일대 병원들에서 잇따라 거절 답변이 돌아왔다.
현장 구급대가 먼저 8곳에 연락했으나 수용이 되지 않았고, 이어 119종합상황실이 경기·서울·충남·전북 등 15곳을 추가로 접촉했지만 역시 ‘불가’ 통보가 이어졌다. 결국 세종지역 대학병원 1곳에서 수용 가능 답변을 받았고, 헬기로 이송돼 같은 날 오후 11시 51분 병원에 도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용 불가 사유는 대체로 비슷했다. 의료진 부족, 산부인과 응급수술 미운영, 신생아 집중치료실(NICU) 여력 부족 등이 거론됐다. 산모 입장에선 “응급인데도 갈 곳이 없다”는 절벽을 마주한 셈이고, 현장 의료진 입장에선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는 한계가 노출된 장면이다.
현행 응급의료법은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환자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예시로 폭행·협박 등으로 정상 진료가 불가능한 경우, 또는 재난·인력·시설·장비 부족으로 적절한 응급의료 제공이 불가능한 경우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문제는 이 ‘현실적 불가’가 점점 일상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고위험 산모는 산부인과 응급수술, 마취, 신생아 집중치료 등 여러 자원이 동시에 맞물려야 하는데, 한 축만 비어도 수용이 멈춘다. 결국 응급 상황에서 산모는 병원들 사이를 떠돌고, 이송 시간은 길어지며, 위험도는 커진다.

산모가 갈 병원이 부족해지는 배경에는 분만 인프라 자체의 축소가 깔려 있다. 2020년 473곳이던 분만 가능 의료기관이 2025년 6월 348곳으로 줄었고, 분만 기관이 한 곳도 없는 시군구가 77곳에 이른다는 국회 자료 인용 보도도 나왔다. 응급 상황에서 “가까운 곳부터”라는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장에서는 단순한 ‘병원 찾기’가 아니라, 고위험 산모를 위한 이송 체계 자체가 재설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산모·신생아(특히 NICU) 자원 가동률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119 상황실과 즉시 연동하는 체계를 촘촘히 깔아야 한다. 둘째, 권역별 고위험 산모 진료기관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연락→거절→재연락”의 반복이 아니라 “즉시 배정”에 가까운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고위험 분만을 실제로 수행하는 기관의 손실을 보상하고 인력 유지가 가능하도록 재정·제도 설계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에 대한 사후보상 시범사업 대상기관을 선정하는 등 관련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현장 체감으로 이어지려면, 지정·지원만큼이나 “응급 이송의 마지막 1시간”이 끊기지 않도록 연결망을 완성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건은 산모가 치료를 받고 퇴원해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결과가 ‘무사’였다는 사실이 시스템의 정상 작동을 의미하진 않는다.
응급 상황의 산모가 3시간 가까이 병원을 찾아야 했던 현실 자체가 경고다. 출산 장려 구호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위급할 때 갈 수 있는 병원”이 먼저 보장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