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도시” 하면 떠오르던 전통 강자는 늘 뉴욕이었다. 그러나 2025년, 판도가 바뀌었다. 글로벌 자산 보고서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억만장자 수가 뉴욕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베이에는 현재 억만장자 82명, 뉴욕에는 66명이 거주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베이는 68명, 뉴욕은 60명이었지만, 베이는 20% 가까이 증가하며 뉴욕과 격차를 벌렸다. 인구 1만 1,600명당 억만장자 1명 꼴로, ‘밀도’에서도 세계 최정상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오픈AI, 앤트로픽 등 초대형 생성형 AI 스타트업과 관련 기업들이 베이 지역에 몰려들면서 막대한 자본과 인재가 유입됐다. AI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는 급등했고, 비상장 주식을 상장 전에 거래하는 세컨더리 마켓이 활성화되면서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들이 상장 없이도 수천억 원을 현금화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전 세계 498곳, 총가치 2.7조 달러에 달하는 AI 유니콘 중 상당수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피스 시장에서는 2024년 4분기 신규 임대 계약의 46%가 AI 기업이었다. 팬데믹 이후 얼어붙었던 도심 상권과 부동산 시장이 AI로 인해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억만장자뿐 아니라 백만장자 수에서도 베이는 뉴욕을 앞서고 있다. 2013~2023년 10년 동안 베이 지역의 백만장자 수는 82% 증가(305,700명)했고, 뉴욕은 48% 증가(349,500명)에 그쳤다. 인구 대비 비율에서도 베이(3.97%)가 뉴욕(3.95%)보다 근소하게 앞선다.
뉴욕의 강점인 금융·미디어·부동산 기반의 부 축적 속도가, AI를 중심으로 한 베이의 신경제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양상이다.
뉴욕과 베이의 경쟁 외에도 새로운 ‘부의 도시’들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스코츠데일(+125%), 웨스트팜비치(+112%), 오스틴(+90%), 마이애미(+94%), 워싱턴DC(+92%)가 지난 10년간 백만장자 증가율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였다. 세제 혜택, 규제 완화, 기후와 라이프스타일, 원격 근무 확산이 이들 도시의 매력을 높였다.
국제적으로는 중동과 인도가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두바이, 아부다비(+80%), 리야드(+65%)는 석유와 자본 개방, 장기 거주 비자 정책으로 고액 자산가를 끌어들이고 있다. 인도의 IT 중심 도시 벵갈루루(+120%) 역시 기술 창업 붐과 글로벌 투자 유입으로 ‘차세대 부의 도시’ 반열에 올랐다.
반면 서울은 최근 순위에서 하락세를 보였다. 부유층의 해외 이주 선호가 커지고, 경쟁 도시들이 세제·이민·거주 환경을 혁신하는 사이, 서울은 여전히 주택 규제, 높은 세율, 경직된 투자 제도로 발목이 잡혀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이 AI·디지털 특구 지정, 장기 거주 비자 확대,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 규제 완화 등 종합적인 패키지를 마련하지 않으면 ‘부의 도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가 만든 부의 축적 메커니즘은 단순한 산업 호황을 넘어선다. AI 자본은 R&D 투자, 데이터센터 건립, 오피스 확장으로 이어지고, 이는 고소득 일자리 창출과 고급 주택 수요, 고급 소비 생태계 확장으로 연결된다.
이른바 ‘AI → 기업 가치 급등 → 자산 현금화 → 지역 부 집중’의 고속 승수효과다. 이 흐름을 놓친 도시는 단기간에 격차를 벌리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