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제조업을 다시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에 속도를 내면서,
세계 경제가 새로운 형태의 냉전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과거처럼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경제와 기술이 무기화된 경쟁, 즉 “냉전 2.0 – 경제편(Economic Cold War)”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냉전 1.0이 군사력과 이념의 충돌이었다면, 냉전 2.0은 기술과 공급망, 데이터, 자원의 전쟁이다.
미국과 중국은 총을 쏘지 않지만, 반도체·AI·배터리를 두고 치열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2022년 제정한 CHIPS and Science Act를 통해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 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북미 최종조립 및 핵심광물/부품의 우방 조달 요건을 충족한 차량에만 세재 혜택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단순한 산업 육성이 아니라, 사실상 “경제 안보”를 앞세운 신(新)형 보호무역이다.
전문가들은 “냉전 1.0이 군사 중심의 봉쇄였다면, 냉전 2.0은 경제 중심의 봉쇄로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국은 리쇼어링을 통해 단순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전략산업의 주도권 회복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디커플링(Decoupling)’을 본격화하며,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탈피하려 하고 있다.
그 대신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한국·일본·멕시코·캐나다 등 우방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급망 동맹을 구축 중이다.
경제를 중심으로 한 가치 동맹(Value Alliance)이자, 동시에 “중국을 배제한 신경제 블록”의 형성이다.
중국 역시 가만히 있지 않다.
‘내순환 전략(双循环)’을 내세워 자급률을 높이고, BRICS 확대와 위안화 결제망(CIPS)을 통해
달러 중심 금융질서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와 중동, 남미를 중심으로 자원·인프라 협력을 강화하며 ‘대체 경제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즉, 미국이 “닫는 전략”이라면 중국은 “새로운 문을 여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이로써 세계는 점차 미국 중심권과 중국 중심권으로 분리되는 ‘이중 경제체제(dual economy)’로 재편되고 있다.
이제 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시장이 아니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AI 등 핵심 산업별로 서로 다른 공급망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G7·IPEF, 중국은 BRICS·일대일로(BRI)를 중심으로 세를 넓히고 있다.
구분 | 미국 중심 | 중국 중심 |
---|---|---|
기술 | 반도체, AI, 양자기술 | 배터리, 통신장비, 희토류 |
금융 | 달러, SWIFT | 위안화, CIPS |
무역 네트워크 | IPEF, G7 | BRICS, BRI |
생산망 | 리쇼어링·프렌드쇼어링 | 내순환·글로벌 사우스 연대 |
이러한 흐름은 자유무역 체제를 무너뜨리고, “경제 블록 시대(Economic Bloc Era)”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이 ‘셧다운(경제 폐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부분적 폐쇄성(partial closure)은 이미 현실화됐다.
글로벌 생산망은 효율보다 ‘안보’를 우선하게 되었고, 기업들은 원가보다 정치적 안정성을 기준으로 투자 지역을 고른다.
이는 세계 경제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대신, “우리 편 경제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보호주의와 지정학’의 결합이 냉전 2.0의 핵심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중간 국가들에 큰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한국, 독일, 인도, 호주 같은 중견 제조국들은 미국의 공급망 블록에 참여하지 않으면 기술 접근이 제한되고, 반대로 중국과의 거래를 유지하면 제재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즉, 냉전 1.0의 ‘이념 선택’이 냉전 2.0에서는 경제 선택으로 바뀐 것이다.
냉전 2.0은 총성이 없는 전쟁이다.
총 대신 반도체, 전차 대신 데이터, 스파이 대신 알고리즘이 움직인다.
군사력보다 공급망이, 영토보다 자원이 더 큰 무기가 된 시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은 ‘무역의 시대’가 아니라 ‘공급망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국가 간 신뢰와 협력보다 자립과 통제가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세계는 완전히 닫히지 않지만, 완전히 열리지도 않는다.
미국은 “자기 편에게만 문을 여는 경제”, 중국은 “새로운 문을 더 만드는 경제”를 지향한다.
그 사이에서 중간국들은 선택의 압박에 놓여 있다.
결국 냉전 2.0은 군사보다 경제가, 이념보다 기술이 패권을 좌우하는 시대다.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냉전의 부활”이 아니라, 경제로 진화한 냉전의 개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