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음악 시장에서 ‘AI 가수’는 더 이상 미래형 콘셉트가 아니다. 플랫폼 추천과 바이럴 구조 위에서, 사람처럼 보이거나 사람보다 더 빠르게 곡을 쏟아내는 디지털 아티스트가 실제 차트 성적까지 만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제 현실과 디지털을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말이 업계 안팎에서 반복된다.
사례의 상징은 AI 컨트리 프로젝트 ‘브레이킹 러스트(Breaking Rust)’다. AI로 만들어진 곡 ‘Walk My Walk’가 빌보드 Country Digital Song Sales(컨트리 디지털 음원 판매) 차트 1위를 기록하며 “AI 가수가 빌보드 컨트리를 먹었다”는 헤드라인이 쏟아졌다.
다만 여기엔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컨트리의 1위’라고 해도, 메인급인 Hot Country Songs 전체 1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다운로드 판매 중심의 세부 차트 1위라는 점이다. TIME은 이 지점을 짚으며 “가장 큰 컨트리 히트곡이 됐다는 해석은 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파장은 작지 않다. AP는 이 곡의 보컬 스타일이 실제 아티스트 블랑코 브라운(Blanco Brown)의 음색·창법을 닮게 만들어졌다는 논란과 함께, 동의·표시·보상의 부재가 어떤 갈등을 부르는지 보여주는 사건으로 다뤘다.

‘AI라고 공개하지 않았는데 AI로 보인다’는 유형도 강해졌다. ‘시에나 로즈(Sienna Rose)’는 폭발적인 스트리밍 성적과 달리 실체가 희미하다는 의혹이 확산됐고, 디저(Deezer)가 다수 트랙을 AI 생성으로 감지해 표시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논쟁이 증폭됐다.
핵심은 진위 공방 자체가 아니라, 공방이 곧 마케팅이 되는 구조다. “AI인가?”라는 의심이 클릭을 부르고, 클릭이 추천을 부르고, 추천이 다시 팬덤을 만든다. ‘정체성’이 음악의 바깥에서 흥행 엔진으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2025년엔 가상의 밴드가 스포티파이에서 빠르게 퍼진 뒤, 뒤늦게 AI 프로젝트임을 인정하는 사건도 있었다. ‘The Velvet Sundown’은 음악·이미지·서사를 AI로 만들었다고 밝히며, 청자들이 “우리가 좋아한 건 음악인가, 설정인가”를 되묻게 했다.
이 유형은 ‘가면’이 핵심이다. 처음부터 “AI입니다”를 내걸기보다, 사람 밴드처럼 소비되다가 어느 시점에 정체를 드러내는 방식이 더 강력한 바이럴을 만든다는 점에서 업계가 주목한다.

AI 아티스트가 스트리밍 바이럴을 넘어 라디오 차트로 들어오면서 논쟁은 더 제도권으로 번지고 있다. 빌보드는 AI 아티스트 Xania Monet이 빌보드 라디오 차트에 진입한 사례를 별도로 다루며, “AI(또는 AI 기반) 아티스트가 차트에 들어오는 빈도가 늘고 있다”고 짚었다.
여기서부터는 질문이 더 날카로워진다. 라디오는 편성, 레이블·프로모션, 업계 네트워크가 얽힌 영역이다.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누가 밀었는가’가 성패를 좌우하는 세계에, AI 아티스트가 공식적으로 자리 잡는 순간 ‘가수’의 정의 자체가 흔들린다.
AI·가상 아티스트가 사회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은 FN 메카(FN Meka) 사례가 드러냈다. 메이저 레이블과의 계약이 화제가 됐지만, 인종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계약이 철회됐다.
기술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건 윤리와 책임의 청구서라는 사실을 업계가 확인한 셈이다.

AI 논쟁이 단지 가상의 신인 문제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목소리 자체가 복제 가능한 자산이 됐기 때문이다. 2023년 ‘Heart on My Sleeve’는 드레이크·더 위켄드의 목소리를 닮게 합성해 바이럴을 탔고, 권리 문제로 주요 플랫폼에서 내려갔다.
결국 싸움의 중심은 “누가 불렀나”에서 “그 목소리를 누가 쓸 권리가 있나”로 이동하고 있다.
플랫폼들은 표시와 차단 쪽으로 움직인다. 디저는 AI 생성 음악 감지·표시를 전면에 내세웠고, 스포티파이는 AI·스팸 트랙 문제가 커지며 대량 삭제와 필터 강화가 이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구별이 가능해져도, 문화적으로는 ‘구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청자가 늘어나는 것이 더 큰 변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미 현실과 디지털을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에 들어섰다”는 말이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