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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어르신들은 왜 키오스크를 어려워할까?
  • 이시한 기자
  • 등록 2025-05-09 13: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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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어르신들은 왜 키오스크를 어려워할까?



길거리 패스트푸드점, 병원, 은행, 지하철역. 어디를 가든 키오스크가 우리를 맞는다. 화면을 몇 번 터치하면 주문이 완료되고, 예약이 끝나며, 티켓이 발권된다. 젊은 세대에게는 직관적이고 빠른 이 디지털 도구가 어르신들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존재다.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라는 말은 간단하지만, 그 뒤에 숨은 심리적, 사회적, 기술적 장벽은 복잡하다. 표면적인 이유—기술에 익숙하지 않다—를 넘어,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를 어려워하는 깊은 이유를 심층 취재를 통해 탐구했다.



1. 기술적 소외: 디지털 격차의 뿌리


취재 과정에서 만난 70대 김모 씨는 “스마트폰도 겨우 배웠는데, 키오스크는 매번 다르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스마트폰과 달리 키오스크는 표준화된 인터페이스가 없다.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는 메뉴 중심이고, 병원의 키오스크는 예약 번호 입력을 요구하며, 은행의 키오스크는 복잡한 인증 절차를 거친다. 이 다양성은 젊은 세대에게는 적응 가능한 도전이지만, 디지털 경험 축적이 부족한 어르신들에게는 혼란의 연속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디지털 격차는 단순히 기술 접근성의 문제가 아니다. 지속적인 학습 기회와 동기 부족이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어르신들은 기술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고, 설령 교육을 받더라도 실생활에서 반복적으로 활용할 환경이 부족하다. 이는 기술적 소외로 이어져 키오스크 앞에서 주저하게 만든다.



2. 심리적 장벽: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자존감


심리적 요인은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를 꺼리는 더 깊은 이유다. 65세 이상 어르신 30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감정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68세 이모 씨는 “잘못 누르면 돈이 잘못 빠져나가거나, 사람들이 쳐다볼까 봐 겁난다”고 말했다. 키오스크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하지만, 오류 메시지나 시간 제한은 어르신들에게 “내가 틀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그의 저서 <프레임>에서 자존감과 사회적 맥락의 관계를 다룬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어르신들이 느끼는 틀렸다는 느낌은 “자존감의 위협”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환경에서 실패를 감수하는 데 심리적 부담이 커진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 실패가 곧 무능으로 비춰질까 봐 걱정한다.” 키오스크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어르신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시험받는 무대로 느껴진다.



3. 사회적 맥락: 도움 요청의 어려움


취재 중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75세 박모 씨가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다 결국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젊은 직원에게 물어보는 게 미안하고, 바빠 보이니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빠른 서비스 문화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자체를 부담스럽게 만든다.


게다가, 키오스크 중심의 서비스는 대면 상호작용을 줄였다. 과거에는 점원이 메뉴를 설명하고 주문을 대신 받아줬지만, 이제는 기계가 그 역할을 대체한다. 이는 어르신들에게 “내가 직접 해야만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사회적 고립감이 높은 어르신일수록, 이런 환경은 소외감을 증폭시킨다.



4. 인지적 부담: 정보 과부하와 처리 속도


키오스크의 인터페이스는 종종 정보 과부하를 일으킨다. 한 화면에 메뉴, 옵션, 가격, 할인 정보가 동시에 나타나고, 시간 제한 타이머는 압박을 더한다. 73세 최모 씨는 “화면이 너무 복잡해서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는 나이 들며 감소하는 인지 처리 속도와 관련이 깊다.


Nature Aging의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정보 처리 속도는 20대에 비해 평군  25% 정도 느리다. 키오스크의 빠른 반응성과 복잡한 메뉴 구조는 이런 인지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어르신들은 화면을 해석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스템은 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5. 해결책: 공감 기반의 디지털 설계


전문가들은 키오스크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감 기반 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 표준화된 인터페이스와 단순화된 메뉴 구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본의 일부 키오스크는 “시니어 모드”를 도입해 글씨를 키우고, 단계를 줄이며, 음성 안내를 추가했다. 둘째, 직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 요청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환경이 중요하다. 셋째, 지역사회에서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 어르신들이 기술에 익숙해질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키오스크는 현대 사회의 편리함을 상징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기술적, 심리적, 사회적 장벽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누르기만 하면 된다”는 말 뒤에는 디지털 격차, 실패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소외, 인지적 부담이 얽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이 사람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어르신들이 키오스크 앞에서 당당히 주문할 수 있는 날, 우리의 디지털 사회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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