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이 역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4,000달러를 넘어섰다.
로이터와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월 8일(현지시간) 금 현물과 선물이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가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 흔들리는 가운데, 금은 다시 ‘신뢰의 상징’으로 돌아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승을 “불확실성의 총합”으로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동 지역 긴장 고조, 미·중 무역 갈등, 그리고 미국 대선을 앞둔 정치 리스크까지— 이 모든 변수가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을 키웠다.
로이터 통신은 “세계 경제의 긴장감이 고조될수록 금은 다시 피난처가 된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은 주식·채권 등 위험자산을 줄이고, 변동성이 낮은 안전자산으로 자금을 이동시키는 중이다.
특히 연준(Fed)의 금리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이익보다 손실 회피” 심리가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금값은 달러 가치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미국의 성장 둔화 우려와 연준의 완화적 시그널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자, 금의 상대 매력이 높아졌다.
여기에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목표치를 웃돌면서 실질 금리가 하락하자, 이자 수익이 없는 금이 다시 주목받았다.
시장조사기관 이코노팩트(Econofact)는 “실질 금리가 낮을수록 금의 기회비용이 줄어든다”며 “현 상황은 금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랠리는 개인 투자자만의 움직임이 아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 다변화의 일환으로 금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2024년 중앙은행의 순매입량은 1,045톤으로, 3년 연속 1,000톤을 넘었다.
2025년에도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주요 신흥국이 금 매입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단기 투기 흐름이 아닌 구조적 수요 변화를 뜻한다.
중앙은행이 달러 중심 금융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디-달러라이제이션(De-dollarization)’ 전략을 강화하면서, 금은 외환의 ‘제2의 언어’로 부상하고 있다.
금 관련 ETF(상장지수펀드)로 자금이 대거 유입된 것도 상승세를 뒷받침했다.
특히 인도의 금 ETF 자산 규모(AUM)는 사상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과 유럽의 기관 투자자들도 포트폴리오 내 금 비중을 확대하며 방어적 포지션을 강화하고 있다.
마켓워치는 “이번 금 랠리는 투기적 급등이 아니라, 위기 대응형 자금 유입이 주도하는 구조적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즉, 투자자들이 일시적 불안이 아닌 ‘장기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낙관론을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6년 중반 금값을 온스당 4,000달러, 연말에는 4,900달러로 상향 전망했다.
중앙은행의 매입세, 달러 약세, 인플레이션 압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금의 구조적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다만 단기 조정 가능성도 존재한다.
마켓워치는 “금 선물 시장의 포지션이 과열되고 있다”며 “단기 차익 매물이 쏟아질 경우 일시적 조정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상승 추세는 유지되겠지만 일방향 랠리는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번 금값 급등의 핵심은 단순한 가격이 아니라 ‘심리의 변화’다.
전쟁, 정치, 기후, 경제—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대에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원한다.
달러는 흔들리고, 디지털 자산은 요동친다.
그 속에서 금은 다시 ‘가장 오래된 신뢰의 언어’로 돌아왔다.
세계 경제가 불확실성을 품고 있는 한, 금값의 고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금은 더 이상 과거의 유물이나 장식품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혼돈의 시대에 금은 다시 가장 현대적인 안전자산으로 부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