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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김지미를 쓰러뜨린 병, 대상포진, 대체 어떤 병인가?
  • 김도현 헬스케어 & 건강 전문 기자
  • 등록 2025-12-10 13: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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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미를 약하게 만든 병, 대상포진이란 무엇인가
  • 수두 바이러스가 수십 년 만에 되살아나는 과정
  • 통증의 왕,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남기는 상처

<명자, 아끼꼬, 쏘냐> 스틸컷 = 김지미

김지미를 약하게 만든 병, 이름은 ‘대상포진’

1960~70년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원로배우 김지미가 미국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 영화계에 따르면 고인은 최근 대상포진을 앓은 뒤 건강이 크게 약해진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지며, 결국 미국에서 향년 85세로 눈을 감았다.  

대상포진은 흔히 “물집 나는 피부병” 정도로 가볍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고령층에게는 삶의 질을 송두리째 흔드는 질환이다. 언론과 의료계가 “통증의 왕”이라고 부를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남기며, 일부에서는 시력 저하, 신경마비,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중대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김지미의 별세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겼다.
“대상포진, 도대체 어떤 병이기에 사람을 이렇게까지 약하게 만들 수 있을까.”


수두 바이러스가 다시 깨어나는 순간

대상포진의 시작은 의외로 익숙한 곳에서 출발한다. 바로 ‘수두’다. 어릴 때 한번 겪고 지나간 수두 바이러스(Varicella zoster virus)가 몸속 신경절에 숨어 지내다가, 수십 년 뒤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다시 깨어나면서 대상포진이 된다. 

바이러스는 신경을 따라 피부로 이동하면서 한쪽 몸통이나 얼굴을 따라 띠 모양의 발진과 물집을 만든다. 이때 나타나는 통증은 단순한 ‘따가움’ 수준을 넘어, 전기가 오거나 칼로 찌르는 듯한 격렬한 양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의사들이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통증”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통은 초기 발진과 함께 열, 피로감, 전신 쇠약감이 동반된다. 특히 60대 이상 고령자, 당뇨나 암, 면역억제제를 복용 중인 환자처럼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서 발병 위험이 크다. 


‘통증의 왕’이라 불리는 이유… 대상포진 후 신경통

대상포진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한 번 앓고 끝나는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발진과 물집이 가라앉은 뒤에도 통증이 몇 달, 심하면 몇 년씩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라고 부른다. 

국내 의료진은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평생의 고통”이 될 수 있는 합병증으로 지목한다. 특히 60세 이상, 초기 통증이 심했던 환자, 당뇨병·암 등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에게서 발생 위험이 크다. 한번 시작된 신경통은 일반 진통제로 잘 잡히지 않고, 밤잠을 설치게 할 정도의 격렬한 통증을 반복적으로 일으킨다. 

실제 사례들을 보면, 환자들이 “옷깃만 스쳐도 번개가 치는 것 같다”, “바람만 불어도 살이 찢어지는 느낌”이라고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부 병변은 사라졌는데도 환자의 삶은 계속해서 병에 붙잡혀 있는 셈이다.



실명·뇌수막염·뇌졸중까지… 고령층에 더 치명적인 이유

대상포진의 합병증은 통증에만 그치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어느 신경을 타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눈, 귀, 뇌신경까지 침범할 수 있다.

눈 주변에 발생하는 ‘안면부 대상포진’의 경우, 각막염·포도막염·녹내장 등으로 진행해 시력 저하, 심하면 실명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얼굴과 귀를 침범하면 안면 신경 마비와 청력 소실이 생길 수 있고, 방광 부위에 발생하면 소변을 보지 못하는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더 무서운 합병증은 신경계와 혈관이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뇌·척수 주변을 침범하면 뇌수막염, 뇌염으로 진행해 드물지만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해외 연구에서는 대상포진을 앓은 뒤 일정 기간 동안 뇌졸중과 심근경색 위험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잇따랐다. 일부 대규모 연구에서는 대상포진 이후 뇌졸중 위험이 약 30% 이상, 심근경색 위험이 20~30%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최근에는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에서 심혈관계 사건(뇌졸중·심근경색) 위험이 다소 낮아졌다는 연구도 발표돼, 대상포진이 단순 피부질환을 넘어 전신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령층에게 대상포진이 특히 치명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이가 들수록 면역력은 떨어지고, 당뇨·고혈압·심혈관질환 같은 기저질환이 쌓인다. 이때 대상포진이 한 번만 ‘불을 지펴도’ 체력과 전신 상태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쉽다. 원로배우 김지미가 대상포진 후유증을 겪은 뒤 건강이 약해졌다는 소식에 많은 의료진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72시간 골든타임… “가볍게 넘기지 말고 빨리 병원 가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부분은 ‘골든타임’이다. 대상포진이 의심되는 통증과 발진이 시작됐을 때, 72시간 이내에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시작하면 통증 기간과 합병증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보고돼 있다. 

대개 대상포진은 한쪽 몸이나 얼굴에만 띠 모양으로 수포가 생기고, 피부에 뭔가 나타나기 전부터 해당 부위가 욱신거리거나 화끈거리는 전구 증상이 찾아온다. 이 단계에서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담이 결린 것 같다”며 넘기면, 물집이 본격적으로 번진 뒤에야 병원을 찾게 된다. 이미 통증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시기다.

의사들은 “특히 50대 이상에서, 몸의 한쪽만 유난히 아프면서 따끔한 통증이 이어지고, 곧이어 작은 물집이 올라온다면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곧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대상포진으로 진단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통증이 다시 시작될 때 더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예방할 수 있을까… 고령층에서 더 중요한 ‘백신 한 방’

예방의 키워드로 떠오르는 것은 ‘대상포진 예방백신’이다. 현재 여러 나라에서 5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권고하고 있으며, 최근 연구에서는 예방백신이 단순히 대상포진 발생을 줄이는 것을 넘어 심근경색·뇌졸중, 심지어 치매와 관련된 위험까지 낮추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결과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특히 60세 이상, 당뇨·심장병·암 등 기저질환이 있는 고위험군에서 백신의 이득이 크다고 강조한다. 이미 대상포진을 한 번 앓았더라도, 재발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예방접종을 고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예방백신이 모든 위험을 완전히 없애주는 ‘마법의 방패’는 아니다. 다만 발병률과 합병증 위험을 낮추는 “보험”에 가깝다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모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설마” 하며 넘기지 않고, 지체 없이 진료를 받는 태도다.

원로배우 김지미가 남긴 마지막 뉴스는 안타까운 부고였지만, 동시에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다시 한 번 사회적 화두로 끌어올렸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지병이 있을수록 대상포진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증 뒤에 숨어 있는 이 병의 정체를 제대로 알고,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그가 남기고 간 또 하나의 메시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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