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시드니의 대표적 휴양지 본다이 해변 인근에서 발생한 총격 테러가 세계를 다시 한번 '유대인 대 무슬림'이라는 위험한 이분법으로 몰아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저녁 호주 본다이 해변 인근 아처 파크에서 열린 유대교 명절 하누카 행사 중 발생한 이번 총격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해자 중에는 10세 어린이, 홀로코스트 생존자, 유대교 지도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유대주의 테러" 규정한 각국 지도자
1000명 이상이 모인 행사장에서 두 남성이 군중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50대로 추정되는 용의자 1명을 사살하고, 20대 용의자 1명을 중태 상태로 체포했다. 인근 차량에서는 사제폭발물(IED)로 추정되는 물체도 발견됐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이번 공격을 "유대인 공동체를 겨냥한 사악한 반유대주의적 테러 행위"이자 "우리 국가의 심장을 강타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지도자들이 침묵할 때 반유대주의는 암처럼 퍼진다"며 호주 정부가 반유대주의 확산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각국 지도자들의 이 같은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유대인 대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구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가해자도, 영웅도 '무슬림 이름'
이번 사건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 중 하나는 생존 용의자가 파키스탄 출신으로 알려진 데다 이름이 '나비드 아크람(Naveed Akram)'이라는 무슬림식 이름이라는 점이다. 가자지구 전쟁과 반유대주의 논란이 겹친 상황에서 이런 정보는 편견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그러나 같은 현장에서 정반대의 장면도 벌어졌다. 총격범을 맨손으로 제압해 더 큰 피해를 막은 시민 역시 '아흐메드 알 아흐메드(Ahmed al Ahmed)'라는 무슬림식 이름을 가진 이민자였다.
영상에 포착된 장면에서 그는 주차된 차량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총을 난사하던 범인에게 뒤에서 달려들어 총을 빼앗았다. 총격범이 달아나자 그는 총을 내리고 두 손을 들어 자신이 더 이상 위협이 아님을 알렸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른 범인이 쏜 총에 팔과 손을 맞아 수술을 받았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그는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호주에서 가족과 함께 과일가게를 운영하던 평범한 이민자였다. 두 딸을 둔 아버지이자 무슬림 신자인 그는 단 몇 초의 결단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본다이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쪽에는 '무슬림 이름의 가해자'가, 같은 자리에는 '무슬림 이름의 구조자'도 있었다. 그럼에도 온라인과 일부 정치 담론은 전자만 강조한 채 후자는 쉽게 지워버리고 있다.
개인의 범죄, 집단으로 향하는 혐오
수사와 별개로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슬람은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는 식의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특정 개인들에 의해 자행된 테러이며, 피해자와 가해자, 이를 막으려 한 시민의 정체성은 훨씬 복합적이다.
여론조사와 학계 연구에 따르면 다수의 무슬림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테러를 종교적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이슬람 세계 내부에서도 알카에다, IS 같은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과 거부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범인은 무슬림 이름 → 곧 무슬림 전체의 문제'라는 논리는 개인의 범죄와 집단의 정체성을 고의로 섞는 방식이다. 여기에 "가자지구 전쟁"과 "반유대주의"라는 키워드가 결합되면 사건은 금세 "유대인 vs 무슬림"의 문명 충돌 서사로 과장된다.
코란 5장 32절에서는 하나의 생명을 빼앗으면, 그는 마치 전 인류를 죽인 것과 같다고 말한다. (출처: www.quran.com)
코란이 말하는 생명의 보편적 가치
극단주의 조직은 종종 이슬람 경전 구절을 인용해 폭력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구절의 맥락(배경과 제한 조건)은 삭제되고 "신을 위한 전쟁"이라는 슬로건만 남는다.
코란 5장 32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누구든지 -살인에 대한 형벌이거나 땅에서의 중대한 부패에 대한 처벌이 아닌 한- 하나의 생명을 빼앗으면, 그는 마치 전 인류를 죽인 것과 같고, 누구든지 하나의 생명을 살리면, 그는 마치 전 인류를 살린 것과 같다."
이는 특정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만 보호하라는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명을 인류 전체의 생명에 비유할 만큼 무겁게 보라는 요청이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유대인 민간인을 향한 본다이 총격은 이슬람이 강조하는 생명 존중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반대로 총탄이 날아드는 상황에서 다른 이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진 아흐메드 알 아흐메드의 행동은 "한 생명을 살리는 자"의 모습에 훨씬 가깝다.
프레임 전쟁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본다이 해변의 총격은 분명 유대인 공동체를 겨냥한 반유대주의적 테러이자 호주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비극이다. 이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건이 유대인 전체와 무슬림 전체를 맞세우는 집단 대결 구도로, 가자지구 전쟁을 둘러싼 국제 정치의 편가르기로, 혐이슬람 정서를 강화하는 도구로 소비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돼야 한다.
미국의 종교학자 토드 그린(Todd Green) 교수는 “테러 문제에서 이만큼 집단적 책임을 요구받는 집단은 무슬림 말고는 없다”고 지적하며,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전 세계 무슬림에게 일괄적으로 사과와 규탄을 요구하는 관행 자체가 집단적 낙인이라고 비판해 왔다. 캐나다 안보 전문가 마이클 제쿨린(Michael Zekulin) 역시 “이슬람 영감을 받았다는 테러는 극히 소수의 급진적 해석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뿐, 이슬람이나 무슬림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호주 이슬람 커뮤니티의 자말 리피(Jamal Rifi) 박사는 IS 같은 조직을 두고 “이들은 이슬람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이슬람의 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인권·안보 전문가 폴 스미스(W. Paul Smith)는 “무슬림을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테러 공포를 빌미로 한 이슬람혐오 확산을 경고했다.
이번 사건의 현장에는 무슬림 이름을 가진 가해자와 함께 무슬림 이름을 가진 구조자도 있었다. 비극 이후 벌어지는 프레임 전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얼굴만을 기억하고 어떤 얼굴은 지워버리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혐오와 공존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