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다리를 건너며, 서울의 시간을 읽다
『한강 다리, 서울을 잇다』│윤세윤 지음│동아시아
서울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 위에는 30여 개의 크고 작은 다리가 있다. 많은 이들이 매일같이 그 다리를 건너지만, 정작 그 위에 얹힌 이야기까지 함께 지나치는 이는 드물다. 윤세윤 경기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한강 다리, 서울을 잇다』를 통해 그 무심히 지나쳤던 다리 위에 얽힌 역사, 기술, 사람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이 책은 단순한 다리 안내서가 아니다. 양화대교, 한남대교, 성수대교, 올림픽대교 등 서울의 대표적인 8개 한강 다리를 중심으로, 해당 다리가 왜 그 자리에 놓이게 되었는지, 당시 시대적 맥락은 무엇이었는지를 역사적 서사와 기술적 배경, 그리고 사회적 변화와 함께 풀어낸다. 다리 하나가 도시를 어떻게 바꾸고,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풍부한 자료와 입체적 시선으로 그려낸다.
흥미로운 대목은, 강남 개발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소양강댐이 등장하는 지점이다. 한남대교가 건설되며 강남은 교통망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상습 침수지대였다.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되면서 홍수 조절 능력이 생기고, 강남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 가능 지역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 지도의 중심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하는 데엔 거대한 댐 하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독자에게 신선한 통찰을 안긴다.
책은 다리를 하나씩 소개하며, 그 배경이 된 전쟁과 피란, 산업화와 도시계획, 그리고 교통과 부동산의 흐름까지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예를 들어 한남대교는 6·25 전쟁과 같은 유사시 시민들의 남하를 고려한 군사적 목적에서 시작되었고, 양화대교는 군사 물자 수송을 위한 인천~서울 간 통로로 활용됐다. 각 다리에는 시대와 계층, 도시의 성장통이 녹아 있으며,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가 서민적 정서를 자극하는 이유 역시 이 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조명된다.
공학자이자 저자인 윤 교수는 다리 구조와 공법에 대한 기술적 설명도 덧붙이지만, 일반 독자를 배려해 이를 책 뒷부분에 배치하고,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어도 되도록 구성했다. 덕분에 이 책은 공학서이면서도 인문서이고, 도시역사서이면서도 서울여행기처럼 읽힌다.
『한강 다리, 서울을 잇다』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한강의 다리를 통해 보여주는 보기 드문 시도다. 매일 출퇴근하며 건너는 그 다리가, 사실은 수많은 서사와 시대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도시의 골격을 형성한 다리 위에서, 저자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에 관한 인문적 확장성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서울을 걷는 이라면, 혹은 이 도시의 시간을 읽고 싶은 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손에 들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