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권·숙박’에 더해 암호화폐 보상까지 약속받고 캐리어를 옮긴 외국인 남성 모델 2명이 한국 법원에서 각각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무료 해외여행 제안에 응했을 뿐 마약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의 무대는 공항이었다. 독일 국적 A씨와 스페인 국적 B씨는 2025년 7월 16일 오후 1시 30분쯤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필로폰이 든 캐리어 2개를 들여오려다 세관 검사에서 적발됐다. 검찰과 보도에 따르면 캐리어에는 각각 15.3kg씩, 총 30.6kg 상당의 필로폰이 들어 있었고 시가가 30억 원(약 21억 원대가 아니라 ‘30억 원 이상’으로 추정)으로 평가됐다.
두 사람은 범행 약 한 달 전인 2025년 6월 20일, 독일에서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성명 불상의 인물’로부터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캐리어 2개를 전달해주면 여행 경비와 대가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성공 시 항공권·숙박비는 물론 약 2천만 원 상당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USDT)을 받기로 했다는 대목이 드러나면서 ‘공짜 여행’ 유혹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단면을 보여줬다.

이들의 이동 경로도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2025년 7월 14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머물던 호텔 인근에서 캐리어를 전달받아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에서 위탁 수하물로 부친 뒤,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을 거쳐 김해공항으로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밀반입은 ‘완료’가 아니라 ‘미수’에 그쳤지만, 대량 마약 사건에서 미수 여부가 형량을 크게 깎아주지 않는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법원 판단의 핵심은 “이 정도 규모의 마약 운반을 상식적으로 모르고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부산지방법원 형사5부는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11년을 선고하며, “상당한 양임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지적했고 “마약 범죄의 사회적 폐해”를 이유로 엄중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운반책(일명 드러그 뮬)’을 겨냥한 유인 수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경고다. 여행 경비를 대주는 대신 “가방만 옮겨달라”는 방식은 책임을 회피하기 쉬운 ‘회색지대’처럼 보이지만, 적발되는 순간 법정에 서는 건 대개 운반자다. 수사기관이 ‘광고·메신저 제안’ 같은 비대면 접촉 기록을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판결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여행을 미끼로 “캐리어를 대신 부쳐달라”, “내용물은 묻지 말라”, “보상은 현금·암호화폐로 주겠다” 같은 조건이 붙는다면 그 자체가 위험 신호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도 ‘여행비+USDT 보상’ 구조가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