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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온의 역설, 벚꽃 위의 눈꽃… "기후변화 시그널 더욱 선명해져"
  • 이동원 기자
  • 등록 2025-04-16 21: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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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온의 역설, 벚꽃 위의 눈꽃… "기후변화 시그널 더욱 선명해져"


"벚꽃놀이 갔다가 눈꽃축제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서 만난 시민 박모(38)씨의 말이다. 그는 "아이들과 벚꽃구경을 왔는데 갑자기 눈이 내려 당황했다"면서도 "오히려 더 특별한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올해 4월 중순 서울에 내린 눈은 118년 만의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13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밤부터 서울에 최고 0.6cm의 눈이 쌓였다. 이는 1931년 4월 6일(2.3cm)에 이어 4월 중 역대 두 번째 적설량이다.


만개한 벚꽃 위로 흰 눈이 내려앉는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기상 전문가들은 이를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온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더 빈번해지는 기상 이변, 절리저기압 영향"


이번 4월 눈의 원인은 '절리저기압(cut-off low)'이라는 대기 상층 현상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북극의 찬 공기가 고립된 채 소용돌이를 형성해 지상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기후변화로 인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기후변화연구소는 "기후변화로 극지방과 적도 사이의 기온 차가 줄어들면서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이로 인해 절리저기압과 같은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벚꽃과 눈의 공존은 지구온난화가 초래한 역설적 상황의 한 단면이다. 평균 기온이 상승해 벚꽃은 예년보다 일찍 피지만, 불안정해진 대기 순환으로 갑작스러운 한파가 밀려오는 것이다.



한반도, 이상기온의 실험실이 되다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2023년 한국의 연평균기온은 14.5℃로, 평년(12.5℃)보다 2.0℃나 높았으며, 이는 113년 관측 이래 최고치였다. 지난해 3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9.4℃로 평년보다 3.3℃ 높았고, 9월 평균기온은 22.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더 놀라운 것은 기온의 급격한 변동이다. 지난해 11월과 12월, 일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과 낮았던 날의 기온차는 각각 19.8℃, 20.6℃로 1973년 이래 가장 큰 변동폭을 보였다. 한마디로 기온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상기온은 가뭄과 홍수 패턴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2-2023년 남부지방의 가뭄은 227일간 지속돼 관측 이래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 그러나 가뭄이 끝나자마자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다. 지난해 장마철 강수량은 전국 평균 660.2mm로 평년(356.7mm)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농업·생태계, 이상기온의 최전선에 서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농업 현장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남 고흥의 감귤 농장주 이모(62)씨는 "이제는 제주도 특산물이라고 여겨졌던 감귤이 전남 해안가에서도 잘 자란다"며 "하지만 갑작스러운 한파로 피해를 입기도 해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농작물 적정 재배지의 위도는 129.6km 북상했다. 이제 강원도에서 참외가 재배되고, 전통적인 사과 산지였던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고온으로 사과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식물의 생체 리듬도 혼란스럽다. 지난해 10월에는 봄에 피어야 할 벚꽃이 전남·경남 일부 지역에서 개화하는 '불시개화' 현상이 관찰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홍릉시험림 내 66종의 평균 개화 시기는 50년 전보다 2주 가량 빨라졌다.



이상기온, 재난으로 이어지다


이상기온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대형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철 폭우로 53명의 인명 피해와 8,071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산불도 증가 추세다. 2023년 산불 발생 건수는 596건으로 최근 10년 평균보다 5% 증가했으나, 피해 면적은 4,992ha로 평균 대비 25%나 증가해 대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인체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온열질환자 수는 2,818명으로 2022년(1,564명)보다 크게 증가했다. 해양 생태계도 위험하다.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한 양식생물 대량 폐사로 438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기상청은 "특정 날씨가 예전과 다르다고 해서 모두 기후변화 탓으로 돌릴 순 없지만, 이런 극단적 현상들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분명한 추세"라고 설명했다.



대응 방안 마련 서둘러야


정부는 이상기후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기후위기 재난대응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산사태·붕괴 위험 지역 관리를 강화하고, 전국 지하차도의 침수 대비 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재난 관리 시스템 구축과 취약계층 보호 강화 등의 대책도 추진 중이다.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농작물 신품종 개발과 재배기술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기온 현상은 지구 온난화가 심화되면서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날 것",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실질적 노력과 함께, 이미 변화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사회 시스템 전반의 재설계가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벚꽃 위에 내린 봄눈은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했지만, 그 이면에는 기후위기라는 엄중한 경고가 담겨 있다. 이상기온은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대응 역시 일상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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