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하루 24시간이 백지처럼 느껴진다는 사람이 있다. 출근도, 육아도, 책임도 사라진 시간. 처음엔 자유를 만끽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도대체 지금 뭐 하는 중이지?”, “난 여기 왜 이렇게 있는 걸까?” 자기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이 자유로운 시간이 더 길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수많은 은퇴자들이 겪는 무기력과 상실감의 핵심은 ‘시간의 공백’이다. 이제까지는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직장인으로 꽉 채운 삶이었지만 갑자기 맞이한 여백은 곧 우울감으로 번진다. 많은 전문가들은 말한다. 은퇴 이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획된 취미 생활’과 ‘친밀한 관계의 유지’라고.
독서, 그중에서도 ‘10쪽 독서’를 시작하라
요즘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성인 대상으로 촌철 같은 조언을 주고 있는 상담 전문가 이호선 교수는 유튜브 채널 '머니인사이드'에 출연해 은퇴 후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10쪽 독서'를 제안했다.
10쪽 독서(십독)란 특정 책을 끝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일주일에 한 번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딱 열 페이지만 읽고 그 중 인상적인 문장이나 단어 하나를 공책에 적는다. 그리고 그 문장을 일주일간 곱씹는다. 이 작은 실천이 삶을 바꾼다. “열 페이지씩만 읽고 적어도요, 두 달이 안 돼서 내가 달라졌다는 걸 느낍니다. 지적인 힘이 생기고, 어디 가서도 자신 있게 말하게 돼요.”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독서는 단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나이 들수록 느끼는 ‘뒤처짐’에서 스스로를 구해주는 지적 자구(自救)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혼자 십독을 하는 것도 좋지만, 만약 부부라면 일주일에 한 번 부부가 함께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서로 읽은 부분까지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은퇴 후에 공동의 취미를 갖고 상호 정보 교환을 하는 일은 서로의 정신적, 지적 건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취미는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
이호선 교수는 취미가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짜 취미는 시간이 남을 때 심심풀이로 하는 게 아니라 ‘전문성’과 ‘재미’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덕후’라는 말처럼 나만의 기쁨의 세계를 만드는 일, 그것이 취미이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지만 작게라도 시작해야 진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거나 해보세요. 서예든, 수예든, 복지관 댄스든, 해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일단 시작하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면 된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십독은 돈도 한 푼 안 드니 일단 해보자. 밑져야 본전이니.
머니인사이드 유튜브 캡쳐
집 안에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 무조건 나가라.
이 교수는 “60대 이후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특히 혼자일수록 더 그렇다. 밖을 나가야 내 모습도 가꾸고, 사회 변화도 체감할 수 있고, 나만의 일상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유튜브에서 또 한 번 촌철살인을 날린다. 부부에게는 특별히 “하루 세 시간은 반드시 따로 외출하세요. 같이만 있으면 싸움 납니다.”(기혼자들 극 공감!)
이 교수가 제안한 십독은 이 부분에서도 꽤 유용하다. 집 밖으로 나가서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가는 것이다. 그리고 10페이지 독서 또는 그 이상의 독서도 좋다. 그리고 나만의 좋은 문장 찾아서 쓰기. 희한하게 집 안에는 아무리 책이 많아도 독서가 잘 안 되는 느낌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뭔가 집에서는 소파에 누워서 티비를 보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낮잠을 자야할 것만 같은 이 이상하고도 나쁜 기운이 있기 때문. 그래서 십독을 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외출과 독서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가 가능한 취미가 바로 십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