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장례식 모습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일은, 함께한 시간을 정리하는 행위이자 남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의식이다.
최근 국내 한복 명인 박술녀 원장이 故 이순재 배우의 마지막 길을 위해 정성스레 수의를 마련했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생전 아내가 1년 전부터 수의를 준비해두었다”는 인터뷰에는 갑작스러운 순간을 대비한 예감이 아니라 가장 좋은 옷으로 떠나보내고 싶은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한국에서 수의는 단순한 장례복이 아니다.
한 사람이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하도록 돕는 가장 인간적인 예(禮)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수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베 수의는 오랫동안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그 기원은 조선의 예법이 아니라 1934년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의례준칙’에 있다.
당시 일제는 비단·명주 사용을 금지하며,
전쟁 물자 확보와 조선 민중 통제를 위한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삼베 수의를 강요했다.
즉, 삼베 수의는 우리가 선택한 전통이 아니라 억압 속에서 만들어진 관행이었다.
전통 한국 장례식 상복: 부모를 잃은 죄인의 마음을 뜻하는 '삼베'
조선시대의 예서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조상들은 ‘생전에 고인이 입던 가장 좋은 옷’을 수의로 삼았다.
비단이나 명주, 혹은 깨끗하게 지은 무명을 입히는 것이 마지막을 향한 예였다.
삼베는 오히려 ‘죄를 입은 신하의 옷’이라는 상징을 지녔고,
그래서 상주는 부모를 잃은 죄인의 마음으로 삼베 옷을 입었다.
그 의미를 거꾸로 읽어 고인의 수의를 삼베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당시에는 금기였다.
이 모순은 우리 장례문화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현대 한국 장례식 상복: 검은색 양복과 한복, 완장
장례식장의 풍경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검은 양복과 완장은 사실 1930년대 이후 정착한 서구식 규범이며,
완장의 색과 줄 수 역시 일제가 규정한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한국의 상복은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이었다.
상주와 가족들은 흰 한복으로 마지막 예식을 치렀고,
떠나는 이에게 바치는 마음 역시 ‘하얀 조심(弔心)’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표현되었다.
흰색 상복과 완장을 차지 않은 삼성가의 장례식 (사진: 뉴스1 제공)
2020년 삼성가 장례에서 故 이건희 회장의 가족들이 흰 한복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이했을 때,
‘오랜 전통을 되살린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사회적 호평이 잇따랐다.
특히 이재용 회장이 서구식 완장을 착용하지 않은 모습은,
식민화·서구화된 장례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복원의 신호로 읽혔다.
장례는 ‘떠나는 사람’의 절차이면서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지키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문화적 기록이다.
따라서 상복의 색 하나, 옷감의 재질 하나에도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이 스며 있다.
재현된 한국 전통 수의 (사진제공: 2016년 전통수의 특별전시회 '땅으로 시집가는 날')
전통은 단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비단 수의가 상징하는 것은 결코 부(富)가 아니다. 존엄(尊嚴)이다.
생전에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옷을 입히는 전통은,
죽음을 삶의 연장이자 마지막 예로 바라보았던 한국인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식민지의 흔적이 남은 삼베 수의와 서구식 검은 상복은 이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거에 강요된 의례를 무심코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잊혀진 우리의 장례문화를 다시 복원할 것인가.
박술녀 원장의 손길로 지어진 수의가 유난히 큰 울림을 준 이유 역시,
이순재 배우라는 한 사람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기리는 마음이 우리 사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품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어떤 옷으로 떠나보내는가
—그 선택은 곧, 우리가 어떤 삶의 문화를 지켜가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이 된다.
글: 천수연(서울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