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식물이 건넨 위로, 문학이 받아 적다… 서울식물원, <메리골드 마음식물원> 윤정은 작가 감성 북콘서트
  • 서지원 문화 & 전시 전문기자
  • 등록 2025-12-13 17:20:59
기사수정
  • “한 해의 끝에서 식물이 주는 위로”
  • 낭독이 만든 정적, 토크가 만든 공감
  • 관객의 문장이 이어준 순간… 사인회로 남은 여운


비가 조용히 내리던 13일 오후, 서울식물원 식물문화센터 2층 보타닉홀은 우산에서 떨어진 물기마저도 금세 따뜻해지는 공간이었다. 겨울 프로그램 ‘안아주는 식물원’의 일환으로 열린 ‘감성 북콘서트’는, 날씨와는 반대로 객석의 온도를 한층 더 올리며 성황리에 진행됐다. 무대의 주인공은 소설가 윤정은. 사회는 이시한 교수가 맡아, 문학과 식물이 건네는 위로를 한 시간 동안 차분히 엮어냈다.


“한 해의 끝에서, 식물이 주는 위로”

행사는 시작 10분 전부터 안내 멘트로 관객을 맞았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겨울 식물원이 전하는 포근함 속에 천천히 머물러 달라”는 당부가 장내를 채우자, 관객들은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꾸고 자리를 정돈했다. 유리창 너머로는 회색빛 겨울비가 이어졌지만, 홀 안은 ‘식물이 품은 온기’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오후 2시 정각, 이시한 교수는 가벼운 목례로 문을 열었다. “서울식물원이 예전보다 훨씬 따뜻하고 포근해진 느낌을 받지 않으셨냐”는 인사말은, 마치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작은 난로 같았다. 비가 오고 날이 차가운 날일수록 사람은 더 ‘따뜻한 이야기’를 찾는다. 그 자연스러운 심리가 이날 보타닉홀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25개국 판권’ 소설가, 식물원에서 독자를 만나다

이 교수는 윤정은 작가를 소개하며 작품의 여정을 짧고 또렷하게 짚었다.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소설 부문 은상 수상, 그리고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메리골드 마음 사진관』–『메리골드 마음 식물원』으로 이어지는 ‘메리골드 시리즈’. 특히 이 시리즈가 영미권을 포함해 25개국에 판권 수출이 이뤄졌다는 대목에서는 객석의 박수가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 ‘따뜻한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간다는 사실은 언제나 마음을 움직인다.

윤정은 작가는 무대에 올라 짧은 인사로 관객을 바라봤다.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 관객도, 제목만 들어본 관객도, 그날 처음 만난 관객도 있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낯섦을 경계로 두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은 ‘다 읽었는지’가 아니라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자리”라는 듯, 느슨하고 편안한 속도로 말을 꺼냈다.



낭독의 시간, 문장이 ‘숨’이 되는 순간

이어진 순서는 작가 낭독. 윤정은 작가는 신작 『메리골드 마음 식물원』에서 마음을 건드린 문장을 골라 직접 읽었다. ‘낭독 BGM’이 낮게 깔리자, 객석은 자연스럽게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멀리 있는 잎사귀처럼 눈빛이 흔들렸다. 소설 속 문장은 때로 설명보다 빠르게 마음에 도착한다. 이날의 낭독은 정확히 그 방식으로 사람들을 데려갔다.

낭독이 끝난 뒤, 이시한 교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문장들을 특별히 읽고 싶었던 이유”를 물었다. 작가는 문장에 담긴 감정의 결을 되짚으며, ‘지우는 치유’에서 ‘돌보는 치유’로 이동해온 시리즈의 결말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홀 안에는 말보다 더 분명한 공감이 남았다.


‘세탁소–사진관–식물원’… 치유의 방식이 바뀐 이유

본격 토크는 시리즈가 품은 큰 구조를 따라갔다. 이 교수는 메리골드 시리즈를 “상처를 지워주던 세탁소, 행복과 미래를 보게 하던 사진관, 그리고 마침내 상처를 꽃피워 돌보는 식물원”으로 정리하며 화두를 꺼냈다.

첫 질문은 ‘식물과 마음’이었다. 작품 속 주인공이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꽃말로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이어져 온 점을 짚으며, “왜 식물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가”를 물었다. 이어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관계와 감정의 온도를 관찰하는 방식까지 질문이 확장됐다. ‘식물 관찰이 글이 되는 순간’을 궁금해하는 관객들을 위해, 작가가 일상에서 감정을 문장으로 바꾸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공유됐다.

서울식물원이라는 장소성은 토크 내내 살아 있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 유리 온실의 습도, 잎사귀의 표면 같은 ‘감각’이 대화의 배경음처럼 따라다녔다. 마치 오늘의 행사가 “책 소개”가 아니라 “책의 분위기를 한 번 살아보는 체험”이 되도록 설계된 듯했다.



관객 참여, “누군가의 문장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순간”

행사의 중반은 관객 참여 시간으로 꾸려졌다. 사회자는 “오늘 마음에 남은 문장”을 함께 나누자고 제안했고, 관객 2~3명이 마이크를 받아 짧게 자신의 문장을 꺼냈다. 어떤 이는작가에게 궁금한 점을 붇고, 어떤 이는 방금 낭독을 들으며 떠오른 마음의 메모를 공유했다.

이시한 교수는 그때마다 때로는 공감으로, 때로는 웃음으로 관객과 인터뷰를 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감쌌다. 북콘서트가 ‘작가의 무대’에만 머물지 않고 ‘관객의 자리’까지 넓어지는 순간이었다. 서울식물원이라는 공간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성격—누군가의 속도를 존중하는 장소—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오늘, 겨울을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마지막 토크에서는 윤정은 작가가 “겨울을 지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꼭 전하고 메시지”를 책의 마지막 문장을 낭독함으로써 전했다. "햇살 가득한 날에 내게 온  모든 불행에게 포옹을 비가 내리는 날에 내게 온 모든 행복에게 환호를"이라는 대목에서 객석의 청중들이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공감을 나타내는 순간은, 서울 식물원에서 열린 이날 행사의 정서를 한 번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비는 내렸지만, 마음은 더 밝아졌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정확히 한 시간이 흘렀다. 클로징에서 이시한 교수는 “마음 한 켠이 살짝 말랑해진 느낌”을 조심스럽게 공유했다. 그리고 “겨울 식물원은 단순히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숨을 돌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곳”이라는 말로 오늘의 시간을 정리했다.

행사 후에는 사인회와 포토타임이 별도로 이어졌다. 관객들은 책을 품에 안고 줄을 섰고, 작가에게 건네는 한마디는 대개 길지 않았지만, 가볍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날, 사람들은 더 조용한 방식으로 다정해진다. 서울식물원 보타닉홀에서의 북콘서트는 그 사실을 또 한 번 확인시켰다. 밖은 겨울비였지만, 안은 분명 ‘안아주는’ 온기였다.

1
LG스마트 TV
갤럭시 북 5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