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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연의 AI시대 한국문화 읽기》가을 한강, 디지털의 물결 속에서 되살아나는 한국의 시간과 감성
  • 천수연 문화 전문 칼럼리스트
  • 등록 2025-10-17 18:24:22
  • 수정 2025-10-17 18: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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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무소음DJ파티 (서울특별시 제공)

자연을 즐기기 좋은 이 계절, 가을— 한강은 지금, 디지털 시대의 감성을 품은 축제의 공간이 되었다.


10월 18일부터 26일까지 여의도·반포·뚝섬한강공원에서는 <2025 한강페스티벌_가을>이 열려 음악 공연과 미디어 파사드, 댄스페스티벌이 어우러진다. 10월 18일 뚝섬 한강공원에서는 밤하늘을 수놓는 <드론 라이트 쇼>가 펼쳐지고, 10월 26일까지 매주 일요일 주말에는 <차 없는 잠수교 뚜벅뚜벅 축제>가 이어져 잠수교를 찾는 사람들은 자동차 대신 발걸음으로 한강을 건넌다. 


2025 한강페스티벌 포스터(서울특별시) 2025 잠수교 뚜벅뚜벅 축제 포스터(서울특별시) 


스마트폰을 손에 든 사람들이 한강의 강가에 앉아 있다. 

돗자리를 펴고 배달앱을 열어 치킨을 주문하고, ‘한강 배달존’으로 표시된 QR 위치를 지정한다. 

라면을 먹기 위해 메뉴를 고르면 편의점 자동결제기가 결제 알림을 띄우고, 곧 라면기계에서 물이 끓기 시작한다. 저녁 바람이 불면 누군가는 AI 필터를 켠 카메라로 노을빛을 담고, 다른 누군가는 스트리밍 앱에서 ‘한강 감성 음악’을 자동 추천받는다.

이 시대 한강은 AI와 알고리즘이 우리의 여가를 설계하는, 디지털 감성의 무대가 되었다.


한강에 있는 라면 조리기드론라이트쇼(서울특별시 내손안에 서울)

우리에게 한강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일상과 맞닿은 자연이지만, 그 안의 시간과 감정은 점점 디지털화된 리듬에 맞추어 흐른다. 강변 옆 대형 건물의 미디어 영상 쇼가 밤하늘을 물들이고, 공원의 안전은 AI CCTV가 지키며, 강물의 수온과 바람의 세기까지 데이터로 읽힌다. 

우리는 기술이 짜놓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산책하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스마트한 시스템 속에서도 한강의 물결은 여전히 인간의 마음을 비춘다.


AI 시대의 한강은 기술의 눈으로 더 많이 ‘보이는’ 강, 데이터의 언어로 더 세밀히 ‘기록되는’ 강이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한강을 쉼과 사색의 공간으로 되찾고 있다. 

그 속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전히 자연의 바람과 빛이 머문다. AI가 도시의 리듬을 계산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다. 강을 바라보며 걷는 일, 물결의 반복을 지켜보는 일 자체가 한강을 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이 감각을 되찾는 장소로 만든다.


지금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AI 시대의 한강’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한강의 기억과 한국인의 문화, 그리고 삶의 결이 켜켜이 흐르고 있다.


‘한강’이라는 이름은 한국어 ‘한가람’에서 비롯되었다. ‘한’은 크다를, ‘가람’은 강을 뜻한다. 이름 그대로 한강은 거대한 흐름이다. 평균 폭은 1.2km, 가장 넓은 곳은 4km에 이른다. 세계 여러 도시가 강을 품고 있지만,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이렇게 넓게 흐르는 강은 드물다. 런던의 템스강은 약 450m, 파리의 센강은 200m 남짓하다. 



한강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던 여름의 기억(한강유역환경청 공식블로그)

서울의 한강은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한국인의 역사와 정서가 흐르는 시간의 강이기도 하다.


삼국시대부터 한강의 중·하류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던 중심이었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그 흔적은 지금도 송파구 풍납동의 ‘풍납토성’에 남아 있다. 

근대 이후 한강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상징이 되었다. 1960년대 서울이 확장되면서 강은 본격적으로 도시의 품에 들어왔다. 한강의 모래사장에서 수영을 즐기던 여름의 기억은 이제 사진 속 장면이 되었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경제성장은 강을 또 한 번 바꾸어놓았다.


1968년에는 여의도 개발을 위해 ‘밤섬’이 폭파되었고, 그 흙으로 쌓은 둑이 지금의 ‘윤중제’다. 1980년대에는 ‘한강 종합개발계획’이 추진되어 강은 직선으로 다듬어지고 깊어졌다. 둔치에는 9개의 한강공원이 조성되고, 잠실에는 올림픽 경기장이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한강은 자연의 강에서 도시의 강, 그리고 인공의 강으로 변모했다. 높은 둑 위로 아파트가 세워지고, 불빛은 밤에도 강물을 비추었다.


오늘날 한강은 또 한 번의 변화를 맞고 있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도시의 리듬을 새로 짜고, 강을 새로운 감성의 무대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이 디지털의 편리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바람의 냄새와 물결의 흔들림을 찾는다. 

그것은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감각이자, 인간이 여전히 자연과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작은 몸짓이다.


한강은 예전에도, 지금도 흐르고 있다. 기술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강물은 제 속도로 흘러간다. AI 시대의 한강은 데이터로 측정되는 공간이 아니라, 기술 속에서도 인간의 감성을 되살리는 장소로 존재한다. 우리가 그 물결을 바라보는 한, 한강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흐르면서도 인간의 마음을 품은 강으로 남을 것이다.




글: 천수연(서울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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