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김정은 위원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시아 순방 중 “언제든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 그의 발언은 단순한 향수일까, 아니면 또 다른 계산이 숨어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의 발언 속에 정치 전략과 외교적 상징 자산을 동시에 노린 ‘이중 플레이라’고 분석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아시아 순방 중 기자들에게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하노이, 판문점 회동을 통해 “김정은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한 그에게, 김정은은 여전히 ‘정치적 자산’이다.
트럼프는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자신만이 북한과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인식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즉, 첫번째 재임 시절의 “역사적 회담”을 자신의 정치적 유산으로 내세워, 외교·안보 역량을 어필하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국제 정세는 5년 전과는 다르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며 미사일·위성 발사를 이어가고,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일과의 삼각 동맹을 굳히고 있다. 이런 구도에서 북한 문제는 ‘협상 대상’이라기보다 ‘압박 카드’에 가깝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다시 만남을 제안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런 경직된 구도 자체를 자신의 무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다. 바이든 행정부가 풀지 못한 난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외교의 트럼프’라는 상징을 되살리고자 한다는 분석이 많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영리하고 강한 리더”라고 평가하면서도, “나와 있을 땐 미사일을 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자신의 재임 기간이 곧 평화의 시기였음을 부각시키는 수사다.
트럼프는 집권 2기 들어서도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북한의 김정은 등 강압적 지도자들과의 ‘개인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들을 “나를 존중하는 강한 리더들”이라고 표현하며, 기존 외교 엘리트가 다루지 못한 상대와 자신만이 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건 단순한 자랑이 아니라, ‘트럼프식 리더십의 차별화 전략’이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나 같은 인물만이 세상을 안정시킬 수 있다.”
김정은과의 만남을 추진하는 것도 바로 이런 ‘힘을 통한 평화’의 연장선이다.
트럼프는 무력 대신 개인적 위압감과 거래 감각으로 상대를 다루는 ‘사업가형 외교’를 자신만의 브랜드로 삼고 있다.
Henrik Ishihara = 판문점
트럼프의 이런 행보는 철저히 내부용 퍼포먼스다. 트럼프는 끊임없이 “자신의 리더십만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김정은과의 만남은 외교적 돌파구가 아니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악할 수 있는 상징적 이벤트로서의 가치가 크다.
“트럼프가 평화를 만든다”는 구도는 그가 가장 선호하는 프레임이다. 실제 협상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북한이 문을 연 것 자체가 트럼프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인식을 만들면 충분하다.
회담 한 번에 ‘김정은을 다룰 줄 아는 대통령’이라는 상징이 남고, 미국 내 보수 유권자에게는 “트럼프만이 평화를 가져왔다”는 기억이 남는다.
하지만 만남의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은 이미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양측은 ‘만남 자체’가 주는 정치적 이익을 알고 있다.
트럼프는 세계의 주목을 얻고, 김정은은 국제적 정상으로서 존재감을 확보한다.
결국 이 만남은 ‘내용 없는 상징 외교’일 가능성이 높지만, 두 인물 모두 그 상징이 필요한 시점일 수 있다.
그래서 ‘정치적 이벤트’로서의 회동 가능성은 남아 있다.
아시아 순방 일정, 트럼프의 즉흥적 행보, 그리고 김정은의 전략적 연출 욕구가 맞물리면, “깜짝 악수” 정도는 충분히 연출 가능하다.
2019년 판문점 회동 때도 사전 협의 없이 “한 번 만나볼까?”라는 트윗 한 줄로 성사된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정책 협상’이 아닌 ‘이미지 정치’ 차원이라면 재연될 수 있다.
결국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내는 러브콜은 평화나 외교보다 자기 정치의 무대 연출에 가깝다.
그는 “김정은과의 관계가 좋다”는 발언을 통해, 자신의 통치력을 상징화하고 자기 자신의 브랜드를공고히 하려고 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만남 제안’ 자체가 뉴스가 되고, 그 뉴스가 곧 트럼프의 존재감을 키운다.
트럼프의 저의는 ‘세계 평화’가 아니라, 영원히 기억될 트럼프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함이다. 혹은 단기적으로 보자면 올해 못 탄 노벨 평화상을 내년에는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한 쇼일 수도 있다.
트럼프의 러브콜은 외교적 실리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를 강화시키려는 상징적 퍼포먼스다. 그에게 김정은은 협상의 상대가 아니라, ‘트럼프 외교’라는 서사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