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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서 잇따른 한국인 구금·사망… 배후엔 ‘스캠 콤파운드’
  • 이시한 기자
  • 등록 2025-10-11 08:31:36
  • 수정 2025-10-11 08: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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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 500만 원 알바”에 속아 지옥으로… 캄보디아서 한국인 피해 속출
  • 디지털 시대의 인신매매, 캄보디아에서 현실이 되다
  • 한국 외교부 ‘격앙’… 캄보디아 대사 소환

캄보디아서 잇따른 한국인 구금·사망… 배후엔 ‘스캠 콤파운드’


외교부, 캄보디아 대사 소환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구금 사건이 잇따르자 한국 정부가 외교적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10월 10일 캄보디아 주재 대사를 소환해, 한국인 대상 온라인 취업 사기와 불법 감금 사건 급증에 대해 강한 우려를 전달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 정부가 프놈펜을 포함한 지역의 여행 경보를 상향 조정하고, 캄보디아 정부에 근본적인 단속 대책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 조치는 지난 몇 달 사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이 연루된 의문의 사망 사건과 강제 감금 사례가 연이어 보도된 데 따른 것이다.


대학생 사망 사건이 촉발한 공포

논란의 중심에는 지난 8월 발생한 한국인 대학생 사망 사건이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 학생은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납치 당했다. 
현지 경찰은 사망 원인을 ‘심장마비’로 발표했으나, 유족과 한국 언론은 “고문 또는 폭력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제기했다. “시신에서 구타 흔적이 발견됐으며, 감금 정황이 확인”되어 한국 외교부가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한다.

또 다른 사건도 있다. 9월에는 프놈펜 도심에서 50대 한국인이 중국인 4명과 캄보디아인 1명에게 납치·폭행당한 후 구출됐다. 현지 경찰은 이들을 체포했으며, 범행 동기와 배후 조직의 규모를 조사 중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니라 조직적인 납치·공갈 형태의 스캠 범죄로 보고 있다.


급증하는 신고, ‘구금형 사기’의 실체

한국 외교부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국인 대상 납치·구금 신고 건수는 2024년 220건에서 2025년 들어 300건 이상으로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수치는 ‘납치’뿐 아니라 취업 사기와 연계된 강제 구금까지 포함한 수치다.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범죄 조직은 SNS나 구직 플랫폼을 통해 “월 500만 원 이상 고수입 일자리”를 제안하고, 피해자가 입국하면 여권을 압수한 뒤 감금·노동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피해자들은 주로 ‘스캠 콤파운드(Scam Compound)’로 불리는 건물 안에 수용된다.
이곳은 겉보기엔 IT회사나 콜센터로 위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온라인 도박·투자 사기·몸값 요구 등을 수행하는 국제 범죄 거점으로 확인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캄보디아, 스캠 산업 방조”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 은 올해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에 약 50여 개의 스캠 콤파운드가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감금된 채 전기 고문이나 구타를 당하며, 외부 연락이 차단된 상태로 ‘온라인 사기 작업’을 강요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앰네스티는 “캄보디아 당국이 범죄 단속을 선언했지만, 일부 지방 관리가 묵인하거나 이익을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역시 “스캠 산업의 경제 규모가 연간 100억 달러 이상으로, 캄보디아 GDP의 상당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일부 지역 사회가 스캠 산업에 의존하는 구조로 변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속 나선 캄보디아 정부, 그러나 실효성은 의문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 여름 이후 강도 높은 단속을 예고했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당국은 6월 이후 약 40여 개 스캠 콤파운드를 급습하고 2,100명 이상의 용의자를 체포했다.
체포된 이들 중에는 중국인, 태국인, 베트남인뿐 아니라 일부 한국인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단속 이후에도 새로운 콤파운드가 재가동되는 등 ‘두더지식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정부의 단속이 일시적이며, 뇌물과 부패로 인해 체계적인 근절은 어렵다”고 비판했다.


전문가 “해외 취업 사기, 신종 인신매매 형태로 진화”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해외 범죄가 아닌, 디지털 시대의 신종 인신매매 형태로 본다.
범죄 조직이 온라인 구인 플랫폼과 SNS를 활용해 피해자를 자발적으로 이동시키는 ‘자기 납치(self-abduction)’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국제 형사정책연구소(ICPS)의 한 관계자는 “기존의 납치가 물리적 강제였다면, 지금은 ‘디지털 유인형 강제노동’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의 대응은 단속이나 경보 발령을 넘어, 구직 플랫폼 규제와 해외 인력 이동 관리 강화, 그리고 피해 예방 교육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인 대상 범죄, 더는 남의 일 아냐”

캄보디아 현지의 스캠 콤파운드 문제는 이제 단순한 외국인 범죄를 넘어 글로벌 사이버 인신매매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인 피해자 증가 역시 이러한 흐름의 일부로, 외교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는 최근 피해자 가족 지원 체계 강화를 검토하고 있으며, 해외 안전여행 플랫폼에 ‘취업 사기·감금 위험국가’ 경고 문구를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값비싼 교훈’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의 한 번의 선택이, 생사를 가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개인의 경각심과 정부의 구조적 대응이 동시에 강화되지 않는다면, 제2의 비극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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