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공인중개사 면허가 점점 더 깊은 장롱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집계에 따르면 2025년 8월 말 기준 영업 중인 개업 공인중개사는 11만 445명이다. 이는 올해 1월의 11만 1,794명보다 1,349명 줄어든 수치다.
한편, 공인중개사 자격증 보유자는 약 55만 1,879명(2025년 4월 기준)으로 추산된다. 이 수치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면허를 가진 사람 5명 중 1명(약 20%)만이 실제로 사무소를 열고 영업 중이라는 뜻이다. 즉, 자격증을 취득한 10명 가운데 8명은 중개업을 하지 않거나 이미 시장을 떠난 상태다. 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중개사무소의 수가 2020년 이후 줄곧 ‘11만 명대’에서 정체된 반면, 자격증 취득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 면허의 실질 활용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공인중개사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퇴직 후 제2의 인생 자격증’의 대표주자였다. 2006년에는 응시자 수가 30만 명을 넘어섰고, “나중에라도 사무실 하나 차리면 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2025년 8월 신규 개업자는 584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처음으로 월 신규 개업이 600명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반면, 폐업·휴업 신고는 그보다 많았다. 2023년 2월 이후부터는 신규 개업보다 폐업이 많은 ‘역전 현상’이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거래량이 줄고 수수료가 줄면서 사무실을 유지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며 “한때는 ‘퇴직 후 노후 대비’로 면허를 땄지만, 지금은 유지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면허는 한 번 취득하면 별도의 갱신 절차 없이 평생 유효하다.
이 때문에 시험에 합격한 인원이 누적되면서 면허 보유자 수는 꾸준히 늘지만, 활동 중개사는 경기 변동과 부동산 정책에 따라 급감한다.
2025년 8월 현재 약 55만 명이 면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사무소를 운영하는 중개사는 11만 명 수준. 즉, 활동률 20% 안팎이 이미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5년간 부동산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이 비율은 점점 더 낮아지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이제는 ‘면허가 있어도 밥벌이는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전한다. 특히 부동산 플랫폼의 확산과 AI 중개 시스템 도입이 중개업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중개업의 ‘인간적 강점’이 줄어들면서, 면허의 시장 가치는 점점 더 희미해지는 셈이다.
면허 장롱화의 배경에는 단순히 경기침체만 있는 게 아니다.
전문가들은 ‘면허 공화국’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따르면, 국가자격증 보유자 중 60% 이상이 실제로 해당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다.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예외가 아니다.
시험이 대중화되면서 ‘혹시 모르니까 따두자’는 심리로 응시하는 사람이 늘었고, 자격증 취득이 곧바로 취업이나 개업으로 이어지지 않게 됐다.
또 다른 요인은 중개업 진입의 리스크다.
최근 몇 년간 대출 규제와 부동산 세제 강화, 거래절벽이 겹치면서 ‘사무실을 열면 바로 수입이 생긴다’는 기대가 깨졌다.
개업 초기 임대료·광고비·보험료 부담도 커졌다.
결국 많은 이들이 면허를 따고도 ‘언젠가 쓰겠지’라는 막연한 보유 상태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는 20만 명 안팎이다.
매년 새로운 합격자가 나오고, 시장 진입은 줄지만 면허는 계속 쌓인다.
이 현상은 공인중개사 면허가 여전히 ‘가능성의 상징’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중개사 교육업계 관계자는 “많은 수험생이 실제로 중개업을 할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 쓸 수 있는 보험’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장롱 속 면허는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 ‘보류된 희망’의 증거이기도 하다.
결국 면허 자체의 가치는 줄고 있지만, ‘활용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 일부 중개사들은 단순 중개에서 벗어나 세무·법률·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결합한 ‘전문 부티크형 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지역 커뮤니티 중심으로 신뢰를 구축하거나, AI 부동산 데이터를 활용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제 공인중개사는 단순히 매물을 연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를 해석하고 위험을 조언하는 전문가로 진화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면허는 앞으로도 계속 장롱 속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현재, 55만 명이 공인중개사 면허를 갖고 있다.
그중 44만 명은 시장 밖에 있다.
자격증을 따는 건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건 ‘그걸 실제로 쓰는 일’이다.
면허는 늘었지만, 역할은 줄었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장롱 속 자격증이 언젠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