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내내 하늘은 흐렸고,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가을이 시작되었다는 느낌보다, 마치 여름의 연장처럼 계속되는 비에 일상이 눌렸다.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비가 간헐적으로 또는 지속적으로 내려 각지의 나들이 계획은 줄줄이 취소되었고, 논밭과 들녘은 물기로 가득 찼다. 정작 연휴 내내 ‘비 그치나’ 싶으면 다시 빗줄기가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 흐름이 단지 연휴 한정 흐림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가을 장마’의 전주곡일까? 날씨 예보를 보면, 이번 주에도 비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기상청 단기 예보에 따르면 수도권을 비롯한 대부분 지역은 약한 비에서 시작해 오후 시간대 강한 비가 예보되어 있으며, 강원 영동을 중심으로 집중호우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예보 통계에서는 16~18일 사이 많은 지역에 비가 내리고 최고 강수량도 상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이 정도면 가을 장마 아닐까”라는 말은 단순한 입소문이 아니라 기상 패턴을 짚는 감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왜 요즘 같은 가을철에 장마처럼 비가 계속될까? 다음은 현재 기상 전문가들과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주요 요인들이다.
가을철에는 여름만큼 명확한 장마전선이 존재하진 않지만,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와 남쪽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부딪히는 정체전선(혹은 전선대)이 형성되기 쉽다. 이 정체전선은 제자리걸음하거나 천천히 오르내리면서 일정 구간에서 비를 계속 뿌릴 수 있다. 최근 기사에서도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수증기가 만나 비구름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가을장마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 연속 강수 패턴은 정체전선이 한반도 상공에 머무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진 데 기인한다. 즉, 대륙 쪽의 고기압이나 찬 공기 전선이 밀고 들어오지 못하고 정체하면서 비 구름대를 유지하는 것이다.
올해 가을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더 남쪽까지 확장되거나 오랫동안 잔류하는 형태가 자주 관측되고 있다. 이 고기압은 따뜻하고 습한 남쪽의 공기를 한반도 쪽으로 밀어 넣는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수분이 풍부한 대기가 상공에 머무르며, 정체전선 또는 저기압 계열의 영향을 강화시키는 배경이 된다.
기상청 예보 분석관은 “평년보다 남쪽으로 확장한 형태의 북태평양고기압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더불어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해수면 온도의 상승도 이러한 패턴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해수가 따뜻해지면 더 많은 수증기를 대기로 공급할 수 있어, 대기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비 구름이 발달하기 쉬워진다. 최근 보도에서는 이번 연속 강수 패턴과 관련해 역대 세 번째 기록을 세운 해수면 온도를 언급하며, 이것이 가을 장마와 유사한 강수 조건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서울대 허창회 교수는 북태평양고기압의 과대 팽창을 유도하는 원인으로 엘니뇨·라니냐의 빈도 변화, 지구온난화, 육지의 기상학 변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정체전선의 정체, 남쪽의 습한 공기의 유입, 고기압의 비정상적 잔류, 해수면 온도 상승 등 복합 요인이 맞물려, 가을철임에도 장마와 유사한 ‘비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 ‘가을 장마’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몇 차례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처럼 장기간에 걸쳐, 전국적으로 비가 퍼지는 양상은 드물다.
9월 한 달 동안 전국 강수일수는 12.6일로, 평년(7.8일)보다 훨씬 많았다. 누적 강수량도 평년의 1.8배를 기록했다. 10월 들어서도 벌써 수도권은 평년 10월 한 달치 강수량을 넘어섰다.
이쯤 되면 “이 정도면 가을 장마 아닌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다만 공식적인 기상학 용어로서의 ‘장마’는 여름철에 국한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가을철 비 정체 구간” 혹은 “이상 강수 패턴”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은 충분히 타당하다. 길고 잦은 비, 습한 공기, 그리고 반복되는 흐린 하늘 — 여름과 가을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을 장마형 날씨’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일까, 아니면 지구촌 기후변화의 징후일까? 전문가들은 점점 후자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우선, 해수면 온도 상승이 결정적인 배경으로 꼽힌다. 올여름 우리나라 남해안과 동중국해의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1~2도 높았다. 바다가 따뜻해지면 수증기 증발이 활발해지고, 그 수증기가 대기로 공급되며 비구름의 연료가 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예년보다 높은 해수면 온도가 한반도 주변 대기 습도를 끌어올리면서 강수 조건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핵심 요인은 제트기류의 약화다. 북극 온난화로 인해 북극과 중위도 사이의 온도 차가 줄어들면서, 계절의 경계를 가르는 바람대가 느슨해졌다. 그 결과, 여름철 고기압이 제때 물러나지 않고, 가을까지 남아 있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즉, ‘여름 같은 가을비’는 지구의 대기 순환 구조가 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기후 불균형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일본 역시 올가을 ‘가을 장마’라는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에 오를 정도로 비가 잦고, 중국 동부는 연속 폭우로 농경지 피해가 속출했으며, 반대로 남유럽은 심각한 가뭄과 폭염을 겪고 있다.
지구가 과열되면서, 한쪽은 폭우, 다른 쪽은 가뭄으로 치닫는 기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기상학자들은 이런 이상 강수 패턴을 “새로운 계절의 리듬(New Seasonal Rhythm)”이라고 부른다.
맑고 건조하던 가을이 이제는 짙은 구름과 비의 계절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지구온난화는 단순히 온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바다와 하늘의 순환을 바꾸고, 계절의 성격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가을답다”라는 표현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이상하게 습하고 흐린 가을”이 보편화되고 있는 셈이다.
올가을의 잦은 비는 단순한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 변화가 이미 우리의 계절 속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이제 “이 정도면 가을 장마 아닌가?”라는 말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지구가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