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으로 붉게 물든 창덕궁 후원(사진: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
10월, 단풍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 창덕궁의 후원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맞는다.
붉게 번지는 단풍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연못의 물결은 바람에 흔들리며 고요한 그림을 그리는
이 계절이 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창덕궁을 찾는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의 정경 (사진: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
1405년, 태종은 경복궁의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창덕궁이다.
조선의 왕들이 가장 오랫동안 거주하며 일상과 정사를 이어간 궁궐이었으며, 권위의 상징인 경복궁과 달리 자연과 조화를 이룬 휴식의 궁궐이었다.
창덕궁은 높은 축대나 대칭 구조를 피하고, 산세와 물길을 따르며 건물을 세웠다.
인공이 자연을 덮지 않고 그 흐름 속에 자신을 놓은 공간이었다.
창덕궁 후원 (사진: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
창덕궁의 정원인 ‘후원(後苑)’은 그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다.
왕이 시를 짓고 학문을 닦으며 사색하던 곳으로, 왕실의 비밀스러운 정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후대에 ‘비원(秘苑)’이라도 불렸다. 이름처럼 고요한 그곳은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중국 이화원(頤和園)의 인공산과 호수 (사진:Wikimedia Commons 제공 )
일본의 료안지(龍安寺)(사진:Wikimedia Commons 제공 )
창덕궁 후원 부용지 (사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한·중·일의 정원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중국의 정원은 대칭과 웅장한 인공적인 자연 조성을 통해 권력의 질서를 드러내고,
일본의 정원은 돌과 모래로 자연을 함축적으로 상징하며 사유의 공간을 만든다.
반면 한국의 정원은 자연과의 공존을 핵심으로 삼는다.
자연을 그대로 정원으로 삼고, 통제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에 맞춰 함께한다.
창 너머로 걸린 한 폭의 액자 같은 풍경
건물 너머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도록 설계되어,
창밖의 풍경이 하나의 액자처럼 완성되는 순간, 한국 정원의 진정한 미(美)가 드러난다.
부용지와 부용정(위쪽 사진 가운데 정자)
(사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
특히 후원의 연못 ‘부용지(芙蓉池)’와 그 위의 정자 ‘부용정(芙蓉亭)’은 그 정수를 보여준다.
돌계단 위의 이끼, 연못의 곡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어우러지는 이곳은
인간의 손으로 세워졌지만 결코 인간의 뜻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창덕궁의 후원은 그렇게 자연과 인간, 그리고 건축 기술이 함께 만든 살아 있는 정원이다.
이러한 한국의 미학적 가치로 인해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 후원은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의 관리 아래 회차별 예약 탐방제로 운영된다.
한 회차당 최대 100명(인터넷 예매 50명, 현장 발매 50명)만 입장할 수 있으며,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누리집이나 공식 예매처 유포러스에서 예약 가능하다.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AI 시대는 인간과 자연, 동물, 기술이 동등하게 함께 공존하는 세계관을 지향한다.
창덕궁의 후원은 600년 전 이미 그 조화의 방식을 알고 있었다.
자연을 꾸미거나 지배하지 않고, 그 흐름 속에 인간의 자리를 내어준 공간 —그것이 바로 후원의 철학이다.
창덕궁의 후원은 단순한 정원의 미학을 넘어, AI 시대가 강조하는 윤리와 감성의 원형인 것이다.
자연을 담는 카메라, 인간을 품는 자연
연못과 나무, 바람과 돌, 그리고 그 속을 걷는 인간, 자연을 담고 있는 핸드폰 속 카메라까지 — 모두 하나로 어우러진다.
10월의 단풍빛으로 물든 창덕궁의 후원을 걸으며, AI 시대의 인간, 기술, 그리고 자연의 관계를 떠올려보자.
600년 전 이미 창덕궁의 후원은 AI 시대의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인간이 자연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고.”
글: 천수연(서울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