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가 다시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동맹국을 상대로 ‘보호비’를 요구하듯 방위비와 투자 부담을 강요하고, 무역 협상을 협박의 장으로 바꾸며 사실상 깡패식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는 셧다운 위기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해 공무원 해고 가능성을 들먹이며 협박을 가하고, 대통령 권한을 가족의 재산 증식에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는 여전히 건재하다. 왜 미국에서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탄핵이 현실화되지 못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미국 헌법이 대통령 탄핵 요건을 극도로 높게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탄핵은 단순한 정치적 책임 추궁 절차가 아니다. 하원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뒤, 상원에서 3분의 2 이상이 유죄를 선고해야만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의회 구도다. 공화당이 상원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아무리 논란을 일으켜도 공화당 의원들이 대거 이탈하지 않는 한 탄핵은 성립할 수 없다. 제도적 장치 자체가 대통령의 안정성을 우선하는 구조여서, 실질적으로 정치적 합의 없이는 탄핵이 불가능한 셈이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트럼프의 강경 행보가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정당 정치의 현실이다. 트럼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순간, 해당 정치인은 곧바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당의 선거 승리를 좌우하는 상징적 존재다. 그의 지지층은 충성도가 높고, 이들의 결집 없이는 공화당 전체가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의 과격한 언행을 알고도 눈감는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국회의사딩 = 픽사베이
유권자들의 면죄부
국제사회에서는 트럼프의 행태가 깡패짓으로 비치지만, 미국 내부에서는 정반대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지지층은 트럼프를 ‘협상가’로 보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방위비 분담금을 끌어내는 모습은 “강한 미국을 위한 좋은 거래”로 포장된다. 셧다운을 무기로 삼아 공무원을 압박하는 방식도 “비효율적인 워싱턴을 개혁하는 단호한 리더십”으로 해석된다. 대통령 권한을 가족의 사업이나 재산에 활용한다는 비판 역시 지지층 사이에서는 “사업가 출신 대통령의 특유의 방식”이라는 식으로 정당화된다.
이처럼 국제적으로는 비난받는 행동이, 국내 지지층에게는 오히려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권력 남용을 제어해야 할 의회와 사법부의 역할도 약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을 향한 모든 비판과 견제 시도를 “정치적 음모”로 규정하며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한다. 이러한 서사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으며, 제도적 견제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경우도 발생한다.
결국 미국의 견제 장치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트럼프는 정치적 타격 대신 오히려 ‘피해자’ 이미지를 얻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모든 요인이 맞물려, 트럼프는 국제적으로는 깡패짓을 하고, 국내적으로는 권력 사유화 논란을 일으켜도 실질적인 탄핵 위기에 몰리지 않는다. 헌법은 높은 장벽을 쳐 놓았고, 공화당은 당파적 이해 때문에 그를 버리지 못하며, 유권자 일부는 트럼프의 행보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소비한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미국 내에서 트럼프 탄핵은 제도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트럼프의 국제적·국내적 행태는 미국을 ‘세계 경찰’에서 ‘세계 깡패’로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헌정 구조와 정당 정치, 그리고 유권자 심리라는 3중 구조가 그를 지탱하고 있는 한, 탄핵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결국 트럼프의 정치적 부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정당,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 낸 합작품에 가깝다. 미국인들이 스스로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트럼프식 정치의 재현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