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행정부)이 추진해 온 ‘상호관세’의 핵심 법적 근거를 사실상 부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전 세계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받아치는 장면은 미국 통상정책이 정치·협상·법정을 동시에 무대로 삼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문제는 이 과정이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니라, (1) 법적 패배 → (2) 법적 우회로 가동 → (3) 추가 조사로 더 센 관세 예고라는 3단 변속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는 처음부터 “관세는 의회 권한”이라는 미국 헌법 구조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방식이었다. 행정부는 관세 부과의 키를 IEEPA(국제비상경제권한법) 같은 ‘비상권한’ 해석에 기대며, 무역적자를 “국가비상사태”에 가깝게 포장해 속도를 냈다.
이 방식의 강점은 단순하다.
빠르다. 의회 표결도, 긴 조사도, 긴 공청회도 생략할 수 있다. 그래서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국을 압박하는 ‘협상용 몽둥이’로 기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관세는 기업 비용으로 직결되고, 비용은 곧 소송으로 돌아온다. 관세 부담을 진 기업과 이해관계자들이 “비상권한으로 사실상 전 세계에 세금을 매길 수 있느냐”를 문제 삼았고, 법원은 이 쟁점을 ‘행정부 권한 남용’으로 보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2026년 2월 20일(현지시간) 연방대법원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6대 3으로, IEEPA를 근거로 한 트럼프식 광범위 관세가 대통령 권한을 넘어섰다고 봤다. 핵심은 “관세·조세는 의회 권한이며, 이렇게 큰 정책은 명확한 위임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 판결은 단순히 “불법” 낙인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거둬들인 관세(약 1,750억 달러 규모)가 환급 소송·정산 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 문도 열었다.
패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꺼낸 카드는 무역법 1974년(Trade Act of 1974) ‘Section 122’였다. 이 조항은 국제수지(대외지급) 문제 등을 이유로 최대 150일 동안 비교적 신속하게 ‘전면적 수입할증(관세)’을 걸 수 있는 장치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는 이를 근거로 전 세계 수입품 10% 관세를 즉시 발동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대법원 판결로 IEEPA 관세가 제동 → 같은 날 Section 122로 10% 전면관세 ‘임시 재가동’(최대 150일) → 동시에 301(불공정무역)·232(국가안보) 조사 착수로 ‘추가 관세’ 예고
여기서 150일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크다. ‘임시’이지만, 150일이면 2026년 7월 20일 전후까지다. 그 사이 행정부는 232·301 조사로 더 오래가는 관세 체계를 구축하거나, 의회를 압박해 권한 확장을 노릴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미국발 관세 압박의 영향을 수치로 경험했다. 한국의 2025년 대미 수출은 1,229억 달러로 전년 대비 3.8% 감소했는데, 보도는 자동차·부품·기계류 등에서 감소가 두드러졌다고 짚었다.
이번 ‘전세계 10%’가 실제로 폭넓게 적용되면, 한국 기업은 크게 세 갈래 충격을 받는다.
1) 가격 경쟁력 하락(즉시성) : 10%는 원가·마진 구조를 바로 건드린다.
2) 거래선 재협상(연쇄성) : 미국 바이어는 “관세를 누가 부담할지” 계약을 다시 쓰자고 나온다.
3) 품목별 ‘겹관세’ 리스크(비대칭성) : 이미 232 등 다른 관세가 있는 품목은 “10%가 추가로 얹히는지” 해석이 중요해진다.
시장은 10% 자체도 보지만, 더 경계하는 건 트럼프가 동시에 예고한 232·301 조사다. 이유는 간단하다.
Section 122는 150일짜리인 반면, 232·301은 조사 결과에 따라 더 오래, 더 높은 관세로 갈 수 있다.
한국 관점에서 민감한 지점은 다음이다.
1) 자동차·부품 : 대미 수출의 핵심 축이고, 이미 관세·규제 이슈에 노출돼 있다. 실제로 2025년 대미 수출 감소 품목으로 자동차·부품이 거론됐다.
2) 반도체 : 한국 수출의 ‘엔진’이지만, 미국이 국가안보 프레임(232)에 올리기 쉬운 분야다. 한국의 2025년 전체 수출은 사상 최대였지만, 반도체가 크게 견인했다는 점은 “표적이 될 경우 충격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3) K-뷰티 등 소비재 : 이미 “관세가 K-뷰티 붐을 위협할 수 있다”는 해외 보도도 나왔다. 일괄 10%는 중저가·가성비 포지션에 특히 부담이다.
한국 정부·기업이 노려야 할 포인트는 “당장 10%를 깎아달라”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다음 수순은 232·301로 “품목별 칼날”을 세우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대응은 세 축이 된다.
1) 미국 내 생산·투자와 연동된 예외 설계 :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미국 내 생산 유도” 카드로 써 왔다. 대미 투자·현지화는 협상에서 가장 직접적인 지렛대다.
2) 공급망 증빙(원산지·부품 조달) 강화 : 관세 국면에서는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지” 증빙이 곧 비용이 된다.
3) 시장 다변화의 속도전 : 150일의 유예 기간은 “끝까지 기다려 보자”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분산할 시간이다(동남아·중동·EU 내 포트폴리오 재조정).

이번 흐름은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단지 무역수지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 권한의 최대치 실험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법원은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행정부는 다른 법 조항(Section 122, 232, 301)으로 즉시 우회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10%를 맞느냐/안 맞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150일 뒤, 한국의 주력 품목이 232·301의 표적이 될 것인가.
그 가능성이 커질수록, 한국의 대응은 외교적 설득을 넘어 산업·투자·공급망 구조 재편으로 옮겨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