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라 홈페이지에 Korean Skincare 전용 페이지가 있을 만큼 K-뷰티는 상당히 인기이다. (사진: 세포라 쇼핑몰)
2024년 한국 화장품이 미국 시장에서 프랑스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대미 수출액 약 17억 달러, 전년 대비 54% 급증이다. 이는 단순한 수치의 역전이 아니다. 수십 년간 '뷰티의 본고장'으로 군림해온 프랑스를 밀어낸 이 사건은 이제 K-뷰티가 트렌드의 영역을 벗어나 전세계 주류로 진입했음을 선언하는 상징적 분기점이다.
한류가 닦은 길, 뷰티가 걸었다
K-팝 콘서트장에는 오래 전부터 국경이 없었다. 영어권 팬들이 한국어 가사를 외우고, 동남아시아 10대들이 서울 아이돌의 메이크업을 따라 하는 풍경은 이미 일상이 됐다. K-컬처가 경제적 파급력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K-뷰티는 그 흐름 위에 올라탄 가장 직접적인 수혜 산업이었다.
유통망 확대가 이를 가속했다. 코스트코(Costco)·타깃(Target)·세포라(Sephora) 등 미국 대형 채널에 한국 화장품이 본격적으로 입점하면서 접근성이 달라졌다. 올해 1월에는 세포라와 올리브영이 파트너십을 공식 발표하며 K-뷰티 큐레이션을 전략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시장이 K-뷰티를 '신기한 수입품'이 아니라 '선반 위의 선택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표현의 경계를 흔든 K-팝, 색의 경계에 머문 K-뷰티
K-뷰티 산업 성장의 이면에는 오래된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CNN은 2월 19일 K-뷰티의 확산을 보도하면서 한국 브랜드들의 파운데이션·컨실러 등 베이스 메이크업이 오랫동안 밝은 피부 톤 중심의 제한된 색상 구성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광고 역시 '젊고 마르고 매우 하얀 피부'의 모델에 편중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편중 현상은 매우 아이러니한 지점이다. K-팝 남성 아이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스커트·코르셋·힐 같은 아이템을 무대에서 소화하며 성별 고정관념에 균열을 냈다. 쪼한 메이크업과 스킨케어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세계 팬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이처럼 K-팝이 '표현의 경계'를 흔들 때, K-뷰티는 오랫동안 '색의 경계' 안에 머물러 있었다.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서는 '문화 다양성'의 의미를 모른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고, 미디어를 통해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 형성됐다는 응답은 절반을 넘겼다. 아직 한국에서는 포용을 향한 사회적 감수성이 아직 고르지 않다는 방증이다.
"포용은 이상, 비용은 현실"…뷰티 산업의 딜레마
K-뷰티의 포용성 논쟁은 마케팅 담론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 구조의 문제로 번진다.
일부에서는 현실론을 내세운다. 다양한 색상을 늘릴수록 생산·재고·유통 비용이 커지는 반면, 실제 판매는 특정 인기 색상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색상 다양성이 곧 매출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는 '대표성'이 브랜드 신뢰와 재구매로 직결된다는 경험이 이미 정설로 자리 잡았다. 내가 쓸 수 있는 제품, 나를 닮은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가 소비자 충성도를 만들고 결국 매출을 견인한다는 논리다. K-뷰티가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울수록, 이 딜레마는 더 정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21호와 23호의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던 쿠션(파운데이션) 색상이 이제는 상당히 다양해졌다. (사진 출처: Hera 스마트스토어 쿠션 파운데이션 상세설명 페이지)
2색에서 45색으로…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베이스 메이크업(쿠션 파운데이션 류)은 단 두 가지 색상에 머물러 있었다. 21호 또는 23호.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한국인 얼굴색에만 맞춘 것이라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니즈(Needs)를 담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일반적인 한국인 여성의 얼굴색을 조금만 벗어나기만 해도 21호와 23호는 맞지 않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은 현장에서 먼저 감지되고 있다.
국내 브랜드 티르티르(Tirtir)는 해외 진출 과정에서 '색상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는 비판에 직면한 뒤 쿠션 파운데이션 색상을 45개까지 확대했다. 이는 글로벌 소비자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이며, 내부적으로는 신뢰도와 재구매율이 함께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티르티르는 45개의 쿠션 색상을 출시하고, 있도록 ‘Find my shade’를 통해 자신의 피부색에 맞는 색상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사진: TirTir 공식 홈페이지)
신생 브랜드들의 움직임은 더 빠르다. 멜라닌이 풍부한 피부 톤을 겨냥한 스킨케어 브랜드 'K+Brown'은 K-팝 팬덤 현장에서 확인한 다양성을 브랜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첫 제품 출시 전임에도 대기자 명단이 이미 수천 명 규모로 쌓였다.
짙은 피부색을 가진 소비자를 겨냥한 신생 K-뷰티 브랜드인 'K+Brown’ (사진: 'K+Brown’ 공식 인스타그램)
서울 성수동의 아모레 계열 체험형 매장에서는 맞춤형 파운데이션과 립 컬러를 현장에서 제조해주는 방식으로 개인화 트렌드를 흡수하고 있다. '유리 피부'라는 단일한 이상형에서, '다양한 피부'라는 복수의 가능성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인 미국 사회에서는 “Diversity, Equity & Inclusion(다양성·형평성·포용)”을 특히 강조한다. (사진: 세포라 공식 홈페이지)
K-뷰티 2막의 조건
프랑스를 넘어선 17억 달러는 시작점이다. 글로벌 시장이 K-뷰티를 '가성비 좋은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표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 표준의 조건은 이제 분명해졌다. 세계의 뷰티가 되려면 세계의 피부를 담아야 한다. 제품 설계의 출발점을 단일한 이상이 아닌 다양한 현실에 두고 대표성을 마케팅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것. K-뷰티 2막의 성패는 결국 그 질문에 얼마나 진지하게 답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