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레이 커즈와일,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 인간과 AI가 맞이할 새로운 진화의 문턱
인류는 지금, 기술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레이 커즈와일의 신작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The Singularity is Nearer)』는 바로 이 전환의 순간을 예언하며, 인간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에 대한 강렬한 비전을 제시한다. 20년 전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그 주장은 허황된 공상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AI와 나노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같은 혁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그의 전망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공상이라 치부하기 어렵다.
기술의 파도, 그리고 새로운 인간
커즈와일은 인간의 뇌가 클라우드와 직접 연결되는 시대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라 말한다. 신피질의 확장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인간 자체의 확장을 의미한다. 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현재의 인간’이 아니게 된다. 스스로를 재구성하며 지능을 수백만 배로 끌어올리는 존재, 즉 새로운 종(種)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철학적 질문과 마주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다. 커즈와일은 이에 대해 기술 낙관론자로서 단호하다. 확장된 뇌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새로운 통제와 자기 인식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지금의 불확실성과 모호성은 사라지고, 완전히 자기 주도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논지는 매혹적이면서도 두렵다. 독자는 여기서 인간 정체성의 경계가 어떻게 재편될지를 상상하며 깊은 혼란과 경이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책의 한 축은 ‘증거’다. 커즈와일은 전기, 라디오, 기대수명 연장, 빈곤 감소 등 지난 수세기에 걸친 기술의 발전을 지루할 정도로 나열하며, 기술이 인간 삶을 어떻게 기하급수적으로 개선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 반복적인 수치 나열은 때로 독자를 지치게도 하지만, 결국 그의 메시지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기술은 늘 불평등 속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중에게 보편화되어왔다. 휴대폰이 대표적인 사례다. 처음엔 부자들만의 전유물이었으나, 지금은 인류 대부분이 손안에 지닌 ‘지식 확장 기계’가 되었다.
이 논리를 바탕으로, 커즈와일은 수명 연장과 같은 미래 기술도 결국은 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기에 “죽음은 필연이 아니라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급진적 문장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언제나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커즈와일 역시 일자리 문제를 비껴가지 않는다. 그는 지난 200년간 새로운 기술이 사라진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음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오늘날의 불안을 온전히 달래주지는 못한다. 기존 일자리를 가진 이들이 새롭게 생긴 일자리를 이어받기 어렵다는 현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트럭 운전사의 자리를 대신한다면, 그 운전자가 엔지니어로 재교육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독자는 이 대목에서 커즈와일의 논의가 다소 낙관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저자가 제안하는 ‘혁명적 교육 시스템’이 실제로 사람들의 생애 주기를 따라 적응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SNS 캡쳐
책이 제시하는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 중 하나는 “AI와 경쟁하지 말라, 우리는 AI와 결합한다”는 관점이다. 커즈와일은 1924년으로 돌아간 시간 여행자가 스마트폰을 가진 상황을 예로 든다. 그 시절 사람들의 눈에, 그는 초인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스마트폰과의 경쟁’이 아니라 ‘스마트폰과의 결합’ 덕분이다.
이 비유는 독자에게 AI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국 미래의 인류는 기계와 결합한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갈 것이며, 이는 곧 ‘특이점’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한때 조롱받았던 그의 예측이 이제는 오히려 보수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커즈와일은 AGI(범용 인공지능)의 등장을 2029년으로 전망했지만, 일론 머스크나 샘 알트만 같은 현역 기술자들은 “앞으로 2~3년 내”라고 말한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는 단순한 미래학 서적을 넘어, 지난 20년간 기술 발전의 ‘검증 보고서’이자,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예행 연습서’라 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는 이중의 감정에 휩싸인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세계가 펼쳐진다는 가능성에 설렌다. 죽음이 선택이 되는 세상, 지식과 감각이 무한히 확장되는 세상은 분명 매혹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 ‘기계와 결합한 인간은 여전히 인간인가’라는 두려움이 스며든다.
커즈와일은 철저히 기술 낙관주의자이지만,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그 낙관 속의 그림자 또한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다. 독자에게 기술의 미래를 단순히 예측하는 것을 넘어, 그 미래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는 단순한 과학서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이 열어갈 새로운 세계와, 그 속에서 우리가 겪게 될 불안과 설렘을 함께 담아낸 미래 선언문이다. 과학과 철학, 낙관과 두려움, 현실과 공상이 교차하는 이 책은 독자에게 단순히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