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Spam)은 1937년 미국 미네소타주 오스틴에 본사를 둔 호멜(Hormel Foods)이 선보인 제품이다. 이름은 ‘Spiced Ham(향신료를 가미한 햄)’의 줄임말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다만 ‘Shoulder of Pork and Ham(돼지 어깨살과 햄)’에서 따왔다는 해석도 있고, 단순히 발음이 재미있어서 선택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식적으로 호멜은 특정 설 하나를 확정하지 않고 여러 해석을 인정한다. 어쨌든 짧고 강렬한 이름 덕분에 스팸은 곧바로 미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스팸의 세계적 확산에는 전쟁이 큰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전투식량으로 대량 사용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에까지 전해졌다. 한국과의 첫 인연도 이때 맺어진다. 해방 직후 미군정 시기부터 일부 유입되었지만,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1950~53)이다. 미군이 군량미로 대량 공급하면서 한국인들에게 스팸은 ‘전쟁 속 귀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각인됐다. 쌀밥 위에 얹거나 김치와 함께 끓여 먹는 방식은 당시 절실했던 영양 보충의 기억과 맞물려 이후 음식 문화에 깊이 남았다.
1960~70년대 한국 사회는 경제 성장의 열풍 속에 있었지만, 여전히 육류는 귀한 음식이었다. 냉장 보관 시설이 부족했던 시절, 실온에서 오래 보관 가능한 스팸은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 당시 설·추석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는 ‘체면과 정성’을 보여주는 행위였고, 스팸은 그 요건을 충족한 대표적인 식품이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농심, CJ제일제당 등이 자체 런천미트 제품을 생산하며 가공육 시장이 성장했고, 1987년에는 CJ제일제당이 호멜과 합작으로 국내에서 정식 ‘스팸’ 생산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스팸은 본격적으로 명절 선물세트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CJ 제일제당 제공
1980~90년대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등장하면서 스팸 선물세트는 참치·식용유와 함께 ‘명절 3대 세트’로 자리 잡았다. 광고에서는 “정성과 실속을 전하는 선물”이라는 메시지가 강조됐다. 단순한 통조림이 아니라, 고급 육가공품이자 가족과 지인에게 전할 만한 품격 있는 선물로 포장된 것이다. 스팸은 이렇게 실용성과 체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상품으로 인식되며 명절의 ‘국민 선물’로 굳어졌다.
스팸은 한국인 입맛에 맞게 수많은 요리로 변주되었다. 김치찌개에 넣으면 국물 맛이 깊어지고, 계란에 입혀 부치면 명절 전 요리 못지않은 반찬이 된다. 한국전쟁에서 시작된 ‘부대찌개’는 이제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기 메뉴가 됐다. 최근에는 스팸 마요 덮밥, 스팸 김밥, 편의점 도시락까지 스팸을 활용한 요리가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현재도 스팸은 추석과 설을 앞두고 가장 많이 팔리는 선물세트 중 하나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매년 명절 시즌 스팸 판매량은 급증하며, 일부 프리미엄 세트는 20만~30만 원대에 이르기도 한다. 실속 있는 선택지이면서도 고급화 전략을 동시에 이어가는 셈이다.
스팸은 미국에서 태어나 전쟁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고, 경제 성장기에는 귀한 선물이 되었으며, 이제는 명절에 빠질 수 없는 대표 선물이 됐다. 단순한 통조림 한 캔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과 경제적 변화, 한국인의 실용적 정서가 어우러진 결과다. 한마디로 스팸은 한국 현대사와 함께 성장한 명절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