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장생포문화창고의 아트테이너 전시 작품
연예인이자 동시에 예술가인 '아트테이너(Artist+Entertainer)'가 한국 문화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무대 위 퍼포먼스를 넘어 캔버스와 렌즈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이들의 활동은 이제 단순한 취미를 넘어 진지한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28일 울산 장생포문화창고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 아트 토크'는 이러한 흐름을 지역 문화축제(울산 장생포 고래축제) 속에서 구현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수산물 창고에서 문화예술 거점으로
행사가 진행된 장생포문화창고는 과거 수산물 창고였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산업 유산의 흔적을 간직한 이 건물은 현재 공연장과 갤러리로 운영되며 지역민들에게 새로운 문화 접점을 제공하고 있다.
이날 4층 전시장에는 배우 이태성, 가수 솔비(권지안), 황찬성, 우현민의 회화 작품과 함께, 한국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 헤이든 원(Hayden Won)의 사진 작품이 전시됐다. 특히 헤이든 원과 솔비가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과 소통하는 아트 토크는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선 깊이 있는 대화의 장이 됐다.
아트토크 포스터
"배우는 팀의 조화, 작가는 나만의 시각 표현 가능"
사회자가 "연예인으로서의 활동과 작가로서의 활동은 어떻게 다른가"라고 묻자, 헤이든 원은 명쾌하게 답했다.
"배우로서는 함께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기에 표현에 있어 일정한 제약이 있는 반면 작가로서는 제 시선과 사유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어 훨씬 광범위한 표현이 가능하죠."
그러면서도 두 활동의 본질적 공통점을 강조했다. "결국 배우로서든 작가로서든 제 삶을 녹여내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더 건강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헤이든 원의 사진 작품
일상 속 따뜻함을 담다
"헤이든 님의 작품과 권지안(솔비) 작가님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사랑과 치유라는 주제가 느껴진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헤이든 원은 확실히 동의했다.
"맞습니다. 작품을 거창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여유와 따뜻함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의 사진 작품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포착한 순간들이 어떻게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작품 세계에 관객들은 공감을 표했다.
헤이든 원 작가의 아트토크 모습
진솔한 대화가 만든 공감
관객 질문 시간에는 더욱 솔직한 대화가 오갔다. 한 관객이 "작품은 따뜻한데 실제로 화가 나거나 짜증날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헤이든 원은 허심탄회하게 답했다.
"당연히 그런 순간들이 있죠. 하지만 그 감정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요. 그 시간 동안 산책을 하거나 독서를 하며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합니다."
작품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치유'를 실천하는 그의 모습에 객석 곳곳에서 공감의 반응이 나왔다.
지역 축제가 선보인 문화적 실험
이번 아트 토크는 아트테이너라는 새로운 예술인상을 지역 사회에 소개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연예인의 예술 활동이 부가적 취미가 아닌 진지한 창작 영역으로 인정받는 시대적 흐름을 지역 축제가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례다.
문화평론가들은 "대형 갤러리나 수도권 중심의 문화 행사가 아닌, 지역 축제에서 아트테이너들의 작품 세계를 진지하게 다룬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며 "울산 고래축제가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문화적 담론을 생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고래축제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트테이너의 시대, 그리고 그들의 예술이 지역 축제를 통해 대중과 만나는 새로운 문화 생태계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싹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