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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종묘 차담회, 왜 가장 신성한 공간’ 신실 까지 열렸나?
  • 이시한 기자
  • 등록 2025-10-02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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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묘 신실 개방 논란, 대통령실 요청 있었다
  • 왕실 위패 모신 곳 개방, 절차적 정당성 따져야
  • 종묘 신실, 재현 공간 있는데도 실제 열렸다

김건희 ‘종묘 차담회’ 당일, 왜 ‘신실’까지 열렸나

영녕전 신실 입구 = 궁능유적본부 제공차담회, 그리고 그 이전의 동선

2024년 9월 3일, 김건희 씨가 서울 종묘의 망묘루에서 지인들과 차담회를 가졌다. 그에 앞서 일행은 영녕전을 들러 내부 구조를 관람했고, 이 과정에서 왕과 왕비의 위패(신주)를 모신 ‘신실’ 한 칸이 개방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국가유산청 산하 궁능유적본부는 “차담회가 대통령실 행사라고 판단해 영녕전 신실 한 칸을 개방해 안내했다”고 밝혔다. 


‘신실’의 성격—왜 논란이 커지는가

종묘는 조선·대한제국 역대 군주와 왕비의 신주를 모신 국가 사당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그중 영녕전 ‘신실’은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원칙적으로 공개 관람이 금지되어 있고, 개방된다 해도 종묘대제 등 정례 의식 때에 한정되는 것이 관행이다. 이번처럼 비상시가 아닌 상황에서 특정 일행을 위한 신실 개방이 이뤄졌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


“대통령실 행사로 봤다”는 해명

궁능유적본부는 “대통령실 행사로 판단했다”는 취지로 개방 사유를 설명했지만, 국회 제출 자료에서는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의 ‘신실 1칸 개방’ 요구가 있었다는 답변이 확인됐다. 즉, 현장 기관의 독자적 판단이라기보다 대통령실 측의 요청에 따른 개방이라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다만 기관 측은 “신실 내부로 사람을 들이지는 않았고, 외부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형태였다”고 부연했다. 


차담회가 열렸던 망묘루 - 궁능유적본부 제공

누가, 어디까지 보았나

국회 보고에 따르면 김건희 씨는 외국인 2명과 통역 1명과 함께 영녕전 건물 및 신실 주변을 둘러본 뒤, 망묘루로 이동해 차담회를 진행했다. 대통령실 측은 전날(9월 2일) 오전부터 종묘 일대를 사전 점검하고, 영녕전을 거쳐 망묘루로 이동하는 동선을 사전에 설계한 것으로 전해졌다. 


쟁점 1—재현 공간이 있는데, 왜 실제 ‘신실’을?

국가유산청은 2024년 5월, 망묘루 인근 향대청을 개편해 태조 신실을 재현한 상설 전시를 열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 영녕전 신실 한 칸을 열어 보인 것은 “굳이 실제 신실을 개방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낳는다. 전문가들은 재현 공간을 활용했어도 충분했을 사안이었다는 점에서 유보적 행정 판단이었다고 지적한다. 


쟁점 2—법·절차 위반인가, 재량 행정인가

야권은 “대통령실의 요청에 따른 신실 개방은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반면 유산 행정 실무에서는 대통령 관련 일정이 있을 경우 경호·동선상의 안전과 의전상 필요를 이유로 제한 개방을 검토해온 관행도 존재한다. 결국 핵심은 개방 필요성의 객관성과 절차적 적법성(누가, 어떤 문서로, 어떤 기준에 따라 요청·승인했는가)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서 결재선, 보안·안전 심사, 종교·의례적 금기 검토가 사전에 이뤄졌는지가 규명될 필요가 있다. 


‘보이는 유산’이자 ‘건드리면 안 되는 선’

종묘는 보존과 공개의 균형이 까다로운 유산이다. 2025년 봄, 5년 보수 끝에 정전(정전 제향 공간)의 신주가 환원되며 일반 공개가 재개됐고, 이를 계기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원칙 논의가 더욱 무거워졌다. 관람 편의 확대가 세계적 추세지만, 종묘처럼 의례의 본질이 핵심인 유산은 접근 원칙이 보수적으로 설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개별 일행을 위한 예외 개방은 더 높은 기준의 설명 책임이 요구된다. 


영녕전 = 국능유적본부 제공

대통령실·유산 당국의 설명 과제

첫째, 요청 주체와 내부 승인 절차: 어떤 부서가 어느 수준의 결재로 요청했고, 궁능유적본부는 어떤 내부 기준으로 승인했는가.
둘째, 신실 ‘외부 관람’의 경계 설정: 어디까지가 외부 관람인가(문턱, 기단, 휀스 등 물리적 경계)와 사진·영상 촬영의 허용 범위는 무엇이었나.
셋째, 재현 공간이 있는데도 실제 신실을 개방한 이유: 의전 필요·안전·교육적 가치 중 무엇이 우선됐는가.

이 세 가지가 명확해져야 동일·유사 사안의 재발 방지 가이드라인이 설 수 있다. 


‘특권 이용’ vs ‘문화외교의 장’

이번 논란은 “세계유산의 사적 이용”이라는 프레임과, “국가 위상에 맞는 문화외교 활용”이라는 반론이 정면 충돌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실제로 이번 건 이전에도 역사 유적에서의 비공개 차담회 자체가 공공 규범에 맞는지 논쟁이 있었다. 유산 당국은 “사적 이용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행사 성격(공무/사적), 경비 지급 주체, 시설 사용료 처리를 기준으로 정리해 왔지만, 세계유산 핵심 공간이 관여되면 기준은 훨씬 엄격해져야 한다. 


‘예외’를 제도화하라

전문가들은 ‘예외 개방’ 절차의 제도화를 제안한다.

  • 사전 심사: 의전·보안·보존·의례(종교)·공공성 관점의 다부처 체크리스트.

  • 공개 원칙: 비공개 행사라도 핵심 공간 개방이 있으면 사후 48시간 내 개방 사유·범위·보존 조치 공개.

  • 대안 우선 원칙: 재현 공간·VR 시청 등 대체 수단을 먼저 검토하고, 실제 공간 개방은 최후 수단으로.

  • 기록의무: 개방 직후 상태 점검(미세진동, 습도, 표면오염)과 사진 기록을 의무화.

이런 장치가 있어야 세계유산이 의전과 보존의 긴장 속에서도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논란은 ‘누가 열었나’보다 ‘어떻게 열었나’에 달렸다

이번 사안의 사실관계는 비교적 명확하다. 영녕전 신실 한 칸이, 대통령실 요청으로, 차담회에 앞서 개방되었다. 관람 방식이 “외부에서 내부를 본 것”이었다는 당국의 설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핵심 의식 공간을 특정 일행을 위해 예외 개방했다는 점은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종묘는 보존과 존중의 상징이자 국가 정체성의 의례 공간이다. ‘누구를 위해 열었는가’보다 ‘어떤 절차와 원칙으로 열었는가’가 앞으로의 기준이 될 때, 이번 논란은 유산 행정의 성숙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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