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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트럼프는 왕이 되고 싶은가?.... 160년 금기 깨는 ‘트럼프 얼굴 주화’ 논란
  • 이시한 기자
  • 등록 2025-10-04 23: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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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 250주년 기념주화, 왜 트럼프인가
  • “FIGHT, FIGHT, FIGHT” 새긴 동전, 공화국의 위기
  • 미국 민주주의에 도전하는 트럼프 주화

정말 트럼프는 왕이 되고 싶은가?



‘트럼프 얼굴 주화’ 검토가 던진 공화주의의 질문

미 재무부가 2026년 미국 독립 250주년(세미퀸센테니얼)을 맞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을 넣은 1달러 기념주화 발행을 검토하면서, “미국이 군주국처럼 보일 수 있다”는 오래된 금기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재무부 초안에는 앞면에 트럼프의 측면 초상과 ‘LIBERTY’, ‘1776–2026’이, 뒷면에는 성조기 앞에서 주먹을 치켜든 장면과 ‘FIGHT, FIGHT, FIGHT’라는 구호가 담겼다. 아직 최종 확정은 아니지만 초안 공개만으로도 법·정치·상징의 3중 논란이 촉발됐다.


논란의 1차 쟁점은 법적 타당성이다. 2020년 제정된 ‘유통 기념주화 디자인 개정법(Circulating Collectible Coin Redesign Act of 2020)’은 2026년 기념 1달러 동전 발행을 허용하지만, 살아 있는 인물의 초상·흉상을 뒷면 디자인에 금지하는 조항이 있어 해석 논쟁이 붙었다. 일부 법률가는 이번 초안이 전통적 ‘두상(bust)’ 형식을 피함으로써 조항을 우회했다는 반론도 제기한다. 어찌 됐든 재무부는 “초안 단계”임을 강조하며 추가 검토를 예고했다. 


두 번째 쟁점은 정치적 메시지다. ‘FIGHT, FIGHT, FIGHT’는 2024년 유세 중 피격을 당한 직후 트럼프가 외친 구호로, 개별 정치인의 서사와 직결된 상징이다. 국가 기념사업의 이름으로 특정 현직/생존 정치인의 상징을 화폐에 새기는 것이 정당한가, 정치적 선전의 영역에 접어드는가라는 질문이 따라서 나온다. 재무부는 “미국의 회복력과 민주주의 정신을 형상화했다”고 설명하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세 번째 쟁점은 역사적 금기다. 미국 화폐에는 ‘살아 있는 인물을 넣지 않는다’는 규범이 19세기 후반부터 관철돼 왔다. 배경에는 ‘특정 지도자를 숭배하는 왕정 국가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공화주의 원칙이 있다. 이 관행은 1866년 의회의 조치로 제도화되었고, 이후 미 통화의 대부분은 사망한 인물만을 기념해 왔다. 이번 초안은 바로 그 160여 년의 금기와 정면충돌한다. 


정치적 ‘개인 숭배’와 공화주의의 경계도 핵심이다. 미국 화폐는 국가의 정체성을 요약하는 상징 장치다. 워싱턴이나 링컨이 동전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치적을 넘어 ‘공적 유산’으로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현직(또는 생존) 정치인의 개인적 슬로건과 제스처가 화폐에 새겨질 경우, 상징은 공공의 기억에서 개인의 정치적 브랜드로 단번에 이동한다. 그 순간 화폐는 ‘국가의 얼굴’이 아니라 ‘정치인의 얼굴’이 된다. 


물론 옹호 논리도 있다. 1776–2026이라는 시계(時系) 속에서 트럼프가 미국 경제·외교의 특정 전환을 상징한다는 주장, 1976년 건국 200주년 때도 대통령(아이젠하워 달러 등) 관련 도상이 활용된 전례가 있다는 지적 등이다. 하지만 그 전례의 주인공은 모두 이미 작고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초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브랜드 비치와 트럼프 = 브랜드 비치 SNS 이번 사안은 또한 행정 절차와 정치의 교차점에 서 있다. 초안은 미 재무부·조폐국 시스템에서 공공 자문과 심의를 거쳐 확정되며, 필요할 경우 의회의 주목도 받게 된다. 초안 공개를 주도한 인물은 미 재무관(United States Treasurer) 브랜던(든) 비치로, 그는 X(옛 트위터)에 “가짜 뉴스가 아니다. 첫 초안이 맞다”고 올리며 진위를 확인했다. 다만 이는 ‘발행 결정’이 아니라 ‘검토 착수’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설계 변경이나 전면 재검토 가능성 역시 열려 있다. 


핵심은 ‘화폐에 새길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화폐는 교환의 도구이자, 시민이 매일 접하는 국가의 상징이다. 그 위에 새겨질 문구와 인물은 ‘국가 공동체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 만약 특정 정치인의 구호와 몸짓이 국가 250주년의 기표가 된다면, 그 순간 기념은 분열의 언어가 되기 쉽다. 반대로, 건국 250년의 기념이 ‘개인 숭배’로 비칠 위험을 경계하는 건 공화주의의 자기 방어다. 


결국 답은 절차 속에서, 그리고 시민의 토론 속에서 나온다. 미국은 왕을 세우지 않기 위해 태어난 나라다. 그 나라가 250번째 생일을 맞아 무엇을 새길지, 무엇을 지울지 결정하는 일은 단순한 디자인 선택이 아니다. 어떤 나라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정말 트럼프는 왕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공화국의 한 페이지로 남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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