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이 다시 ‘꼰대 문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독일 태생 혼혈 국가대표 옌스 카스트로프의 한 인터뷰가 불씨가 됐다. 그가 전한 대표팀 내부 분위기는 “존중”이라는 단어로 포장됐지만, 팬들이 받아들인 뉘앙스는 달랐다. 인터넷에서는 “아직도 군대식 위계가 남아 있냐”는 비판이 잇따르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논란의 출발점은 독일 축구 전문 매체 키커(Kicker) 와의 인터뷰였다. 카스트로프는 “한국 대표팀은 매우 예의 바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후배 선수들이 선배들에게 과일을 가져다주고, 식사할 때는 선배가 자리를 뜨기 전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다. 또한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나이 어린 선수가 가장 마지막에 탄다”며 한국 축구 특유의 위계질서를 언급했다.
그는 이를 비판적 어조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가 존중을 중시한다”고 덧붙이며 긍정적으로 묘사했지만, 한국 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팬들은 “이게 바로 꼰대 문화 아니냐”, “예의가 아니라 강요된 위계”라며 즉각 반발했다.
한 네티즌은 “요즘 군대에서도 저러지 않는다”고 했고, 또 다른 팬은 “외국 선수가 보고 놀랄 정도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 팬들은 “단체 스포츠에는 기본적인 질서가 필요한 것”이라며 “단순히 문화 차이로 볼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 논란은 자연스럽게 과거 히딩크 감독 시절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는 한국 축구의 오래된 관행, 즉 나이·학연·출신에 얽힌 서열 문화를 허물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선수 선발에서 학벌이나 소속팀이 아닌 실력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감독과 선수 간의 관계에서도 ‘소통과 평등’을 강조했다.
그 덕분에 당시 대표팀은 이전 세대와 달리 수평적이고 실용적인 팀 문화로 변화했다. 젊은 선수들의 목소리가 반영됐고, 새로운 전술 실험도 가능했다. 4강 신화는 그 문화적 혁신의 산물로 기억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다시 국내 감독 체제로 회귀한 대표팀은 점차 예전의 문화로 되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팬들은 “히딩크가 무너뜨린 꼰대 문화가 홍명보 체제에서 부활했다”고 지적한다.
홍명보 감독은 2024년 대표팀 사령탑으로 복귀했다. 그가 선수 시절부터 보여온 카리스마와 원칙 중심 리더십은 존중받아 왔지만, 동시에 ‘권위적’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카스트로프의 발언이 전해지자 “홍명보 감독이 옛날식 위계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잇따랐다. 홍 감독은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으나, 일부 언론은 내부 분위기를 두고 “세대 차이가 분명하다”고 보도했다. 한 축구 관계자는 “감독이 나이나 기수 중심의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젊은 선수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홍명보 감독은 질서를 중시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선수 자율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단순히 팀 내 규율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문화의 방향성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 여론은 둘로 갈렸다. 대다수 팬들은 “한국 대표팀은 실력보다 위계가 우선되는 집단”이라며 비판했다. “과일을 갖다 드린다니 80년대 이야기 같다”, “엘리베이터 순서까지 따지는 게 무슨 팀워크냐”는 댓글이 이어졌다. 트위터, 네이버 카페, 디시인사이드 축구 갤러리 등에서는 “히딩크가 바꾼 문화를 홍명보가 되살렸다”는 문장이 급속히 퍼졌다.
반면 일각에서는 “문화적 예절을 ‘꼰대 문화’로 몰아가는 건 과도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선후배 간 존중이 나쁜 게 아니다”, “모든 팀엔 리더십 구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특히 일부 중장년층 팬들은 “서양식 평등만이 답은 아니다”라며 세대 간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논란은 손흥민과 이강인 사태로까지 확산됐다. 일부 네티즌은 “손흥민이 대표팀 내 서열을 유지하려다 젊은 선수들과 충돌한 적이 있다”며 “이 문제는 개인의 태도라기보다 팀 전체의 문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손흥민 꼰대 논란’과 ‘이강인 세대 반발’이 다시 소환되며, 이번 카스트로프 발언은 세대 갈등의 재점화로까지 번졌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예의’와 ‘위계’의 경계선이다.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연장자 중심 문화가 축구대표팀이라는 조직에도 깊게 뿌리내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선수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감독이 정해준 틀을 벗어나면 예의가 없다”는 분위기가 유지된다면,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팀워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단순한 세대 갈등으로 보기보다, 조직문화의 성숙도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 스포츠 심리학자는 “선후배 간 존중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권위적 위계로 이어지면 소통이 단절된다”며 “건강한 리더십은 존중을 기반으로 한 수평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히딩크는 20여 년 전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는 실력이 아니라 문화”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2002년 이후 대표팀은 전술적으로는 진화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이 그 그림자를 끊어낼 수 있을지, 혹은 되살릴지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카스트로프의 솔직한 발언은 단지 외국인 선수의 시선이 아니라, 한국 축구 내부가 마주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진 셈이다.
“우리는 정말 실력 중심의 팀인가, 아니면 여전히 나이와 위계 중심의 조직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팬들이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