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창의성’은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시한 『AI시대 창의적 인간』 서평
AI가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심지어는 소설까지 쓰는 세상. 인간은 여전히 창의적인 존재일까? 아니면, 창의성마저 대체될 위기에 처한 걸까? 이시한 작가의 『AI시대 창의적 인간』은 이 불안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AI가 인간을 대신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논쟁을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차별화될 것인가?”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세운다. 그리고 그 해답으로 저자는 ‘크리지먼트(Creagement)’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었을 때 사람들은 ‘AI가 인간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안도했다. “그래도 창의성만은 인간의 영역이야.” 그러나 2022년 챗GPT가 등장하면서 그 믿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소설을, 또 누군가는 유튜브 대본을 AI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놀랍게도 ‘제법 괜찮다’. 이 변화 앞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창의성의 종말’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시한은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AI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AI를 통해 인간의 창의성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AI는 인간의 잠재력을 증폭시키는 도구”라고 정의하며,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창의성이라고 강조한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을 선별하고 편집하는 능력’ — 바로 그것이 인간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AI시대 창의적 인간』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크리지먼트’다. ‘크리에이티브(Creative)’와 ‘매니지먼트(Management)’의 합성어인 이 개념은, 이제 창의성의 중심이 ‘창조’에서 ‘관리’로 옮겨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AI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조합을 시도해본다. 초밥과 맥주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결합해 회전초밥을 만든 것처럼, 전혀 무관한 개념들을 이어 붙이는 창의적 연결도 이제 AI가 훨씬 잘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수십, 수백 개의 결과물 중에서 ‘무엇이 진짜 가치 있는가’를 고르고, 다듬고, 문맥에 맞게 재배치하는 일 — 그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시한은 이 과정을 ‘편집의 창의성’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프로듀서 민희진이 뉴진스의 음악을 통해 보여준 창의성은 직접 작곡이나 작사를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음악과 콘셉트를 시대의 감각에 맞게 재편집하고 재맥락화하는 능력에 있다. 마치 오래된 멜로디를 지금의 감성으로 되살려내는 것처럼 말이다.
AI 시대에 ‘질문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제 진부해졌다. 누구나 프롬프트를 잘 쓰는 법을 배우면서, AI의 답변은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질문의 기술로는 더 이상 차별화될 수 없는 시대,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다를 수 있을까?
저자는 그 답을 ‘판단력’에서 찾는다. AI는 통계적 확률에 따라 가장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 답이 ‘왜 지금 필요한가’, ‘어떤 맥락에서 의미 있는가’를 판단하는 건 인간뿐이다. 즉, AI가 만들어낸 수많은 결과물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인간의 창의성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자신이 챗GPT에게 던졌던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한다. 로제의 노래 「APT」를 프랑스 혁명과 연관지어 해석해 달라고 요청하자, AI는 ‘아파트를 계급사회의 상징으로 보고, 이를 넘어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갈망’으로 읽어냈다.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이 결과물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AI가 생각의 초안을 써준다면, 인간은 그 초안을 다듬고 의미를 부여하는 편집자가 된다.
이 책의 구성은 논리적이면서도 유려하다. 1부에서는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창의성 개념의 변화를 인문학적으로 살핀다. 신에게 부여받은 능력으로 여겨졌던 창의성이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것으로 옮겨오며, 산업혁명과 함께 문제 해결력이라는 실용적 의미로 확장된 과정을 정리한다.
2부에서는 브레인스토밍, 여섯 모자 기법, 디자인 씽킹 등 현대 창의성의 대표적 방법론들을 분석한다. 하지만 저자는 곧 이런 방법론들이 이제는 AI에게 학습되어 오히려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3부와 4부에서는 ‘AI 시대의 창의성’을 새롭게 정의하며, 인간이 AI와 협력해 어떤 방식으로 창의성을 구현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가 직접 AI를 활용해 만든 <시한책방> 로고송의 사례는, 창의성의 새로운 현실을 실감케 한다. 작곡 경험이 전혀 없어도, AI의 도움으로 하나의 완성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AI 시대의 변화를 ‘사진의 발명’과 비교한다. 19세기 중반, 사진이 등장했을 때 화가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이제 그림은 끝났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러나 그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상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가 태어나며 예술의 스펙트럼은 더 넓어졌다. 사진이 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표현하는 쪽으로 회화는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지금의 AI 시대에 정확히 맞닿아 있다. AI가 ‘그럴듯한’ 창작을 빠르게 만들어낼수록, 인간은 오히려 ‘의미 있는 창의성’을 찾아 나서게 된다. AI는 완벽한 기술이지만, 인간은 여전히 ‘이야기의 주체’다.
『AI시대 창의적 인간』은 단순히 AI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는 실용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철학적 응답이다. AI는 인간의 직관, 맥락, 감정, 그리고 판단을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창의성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AI와의 협업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얻는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창의성은 더 이상 예술가나 천재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AI와 손잡고 생각을 확장하는 모든 사람이 ‘창의적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바로, 이시한의 『AI시대 창의적 인간』이다.
AI가 당신의 일을 대신하지는 않겠지만,
당신보다 빨리 배우는 사람은 AI를 활용할 것이다.
이 책은 그 차이를 만드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