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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부순 K-POP 아이돌... 탈북자와 청각장애 아티스트가 만든 새로운 무대, 1VERSE와 Big Ocean
  • 강유진 연예 전문기자
  • 등록 2025-10-12 10: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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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를 넘어, 국경을 넘어: 포용의 리듬으로 춤추는 K-팝
  • 1VERSE와 Big Ocean, 다양성을 노래하다

“소리를 넘어, 경계를 넘어”


탈북자와 청각장애인 아티스트가 함께 만든 K-팝의 새로운 물결

글로벌 무대 위의 K-팝이 또 한 번의 변화를 맞고 있다.
이제 그 중심에는 화려한 퍼포먼스나 음원 차트보다, 누가 무대에 설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한다.
최근 등장한 두 그룹 — 북한 출신 멤버를 포함한 1VERSE(유니버스), 그리고 청각장애를 가진 세 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된 Big Ocean(빅오션) — 은 한국 대중문화가 품은 포용성과 다양성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1verse = 싱잉비틀 제공“국경을 넘어온 아이돌”, 1VERSE의 도전

서울의 연습실. 보이그룹 1VERSE의 멤버 혁(Hyuk)은 땀에 젖은 채 리허설을 마친다.
그의 이력은 여느 연습생과는 다르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13세에 홀로 탈북했다.
“라디오에서 들리던 한국 노래가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그의 과거는 이제 K-팝 무대의 서사로 바뀌었다.

혁과 함께 무대에 서는 멤버 석(Seok) 역시 탈북자다.
석은 중국 국경 근처에서 몰래 본 한국 뮤직비디오를 통해 K-팝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그에게 K-팝은 “자유의 상징이자 또 다른 미래의 언어”였다.

1VERSE는 혁과 석을 비롯해 일본인 멤버 아이토(Aito), 미국인 네이선(Nathan)과 케니(Kenny)가 함께하는 다국적 그룹이다.
그들은 2025년 7월 첫 싱글 앨범 ‘The 1st Verse’를 발매하며 정식 데뷔했다.
타이틀곡 ‘Shattered’는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또 다른 수록곡 ‘Multiverse’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멤버들이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첫 번째가 아니라, 상징적인 첫걸음”

언론에서는 1VERSE를 두고 “북한 출신 멤버를 포함한 상징적 그룹”이라 소개했지만,
이들이 절대적인 ‘첫 사례’는 아니다.
2025년 초 데뷔한 그룹 BE BOYS의 학성 역시 북한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1VERSE는 “국경과 이념의 경계를 허문 상징적 포용 사례”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존재는 여전히 특별하다.
K-팝 무대에 ‘북한 출신 청년’이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음악을 통해 세계에 전해지는 일은 전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한 문화산업 연구자는 “K-팝이 세계화될수록, ‘한국적’이라는 개념은 점점 더 포괄적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며 “1VERSE는 단일한 민족 정체성을 넘어, 다층적 경험을 공유하는 글로벌 K-팝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Big Ocean =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린 소리를 느낀다” — Big Ocean의 무대

청각장애를 가진 세 명의 아티스트가 만든 보이그룹 Big Ocean(빅오션) 역시 K-팝의 고정관념을 바꾸고 있다.
멤버 박현진(PJ), 김지석(Jiseok), 이찬연(Chanyeon)은 각각 난청 또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듣는 음악’이 아닌 ‘느끼는 음악’을 만든다.

Big Ocean은 2024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데뷔 싱글 ‘Glow’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수어(手語)와 안무를 결합해 무대를 구성하며, 훈련 단계에서는 진동 메트로놈과 시각화 장치를 이용해 박자를 익힌다.
무대 위에서는 조명 신호와 시각 큐를 통해 호흡을 맞춘다.
그들의 음악 장르는 스스로 정의한 ‘Free Soul Pop’ — 자유롭고 감각적인 영혼의 음악이다.

데뷔 공연에서 Big Ocean은 수어로 노래 가사를 표현했고, 관객은 함성 대신 손끝으로 파도 모양의 응원을 보냈다.
팬덤명은 바로 ‘PADO(파도)’.
‘소리가 아닌 진동으로 이어지는 공감의 물결’이라는 의미다.


기술이 만든 무대, 사회가 만든 공감

Big Ocean의 공연은 단순히 감동적인 장면을 넘어선다.
AI가 리듬을 시각화해 멤버들의 손목 기기로 신호를 보내고, 조명과 진동이 음의 강약을 대신 전달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기술보다 사회적 인식의 확장에 있다. 청각장애 아티스트를 단순히 ‘극복 서사’로 소비하지 않고, 하나의 예술가로 존중하려는 팬들의 태도 때문이다.

팬클럽 PADO는 멤버들이 사용하는 수화를 함께 배우고, 공연장에서는 ‘조용한 응원’을 보내며
그들만의 새로운 팬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K-팝이 단순한 음악 산업을 넘어, 사회적 연대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성이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이 두 그룹의 등장은 K-팝 산업 내부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포용과 다양성은 예술의 진정성인가, 마케팅 전략인가?”

K-팝은 본래 기획 중심의 산업이다.
그만큼 ‘이색성’이 상업적으로 소비될 위험도 있다.
그러나 1VERSE와 Big Ocean의 행보는 단순한 차별화 전략이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서사를 음악과 무대로 승화시키며, 다양성을 소비의 코드가 아닌 예술의 언어로 바꾸고 있다.

한 공연기획 전문가는 “이 두 그룹은 한국 대중문화의 포용 역량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며
“시장 반응을 넘어, 사회적 수용성 자체를 바꾸는 실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무대의 일부가 되는 날까지”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장애 예술인 지원과 콘텐츠 접근성 확대를 위한 제도적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관계자는 “음악 산업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장애·이주 배경 예술인을 위한 지원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Big Ocean의 박현진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귀로 듣지 않아도 음악은 느껴져요. 리듬은 진동이고, 팬들의 마음은 파도처럼 전해집니다.”

1VERSE의 혁은 그 말을 이어받듯 말했다.
“과거의 나는 노래를 듣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됐어요.”

그들의 무대는 화려하지 않아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 울림은 K-팝이 이제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세상을 잇는 언어로 성장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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