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캄보디아에서 잇따라 발생한 한국인 납치와 감금 사건이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위험은 캄보디아 국경 밖으로 퍼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얀마, 라오스,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도 한국인을 노린 조직범죄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단순한 온라인 사기를 넘어 납치·폭행·감금이 결합된 ‘복합형 스캠’이 동남아 전역을 뒤덮고 있다.
이른바 ‘스캠 콤파운드(Scam Compound)’는 온라인 사기, 투자 유인, 인신매매, 강제노동이 결합된 형태의 범죄 공장이다. 현지에선 콤파운드라는 이름의 복합 단지가 군부나 무장세력의 보호 아래 운영되며, 외국인을 유인해 감금하고 노동과 범죄를 강요하는 실태가 꾸준히 드러나고 있다.
픽사베이 = 미얀마미얀마, 스캠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
특히 미얀마-태국 국경 지대는 지금 이 범죄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2025년 2월, 미얀마 군정은 태국과의 국경 지역에서 외국인 273명을 단속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대부분 콤파운드 내부에서 온라인 사기나 불법 송금에 동원된 인물들이었다.
이 사건은 태국에서 오디션 제안을 받고 국경을 넘어간 뒤 감금된 중국 배우 왕싱(Wang Xing) 사건 이후 벌어진 대대적 단속이었다. 당시 그는 스캠 조직에 강제로 끌려가 수개월간 노동을 강요당했으며, 이 사건이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태국·미얀마·중국 세 나라가 합동 수사에 나섰다.
콤파운드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지만, 현지 언론은 ‘수십 곳 이상이 운영되고 있다’고 전한다. 태국과 미얀마 사이에 위치한 도시 미야와디(Myawaddy)는 대표적인 콤파운드 밀집 지역으로, 각 단지는 군부 또는 지역 무장세력과 결탁해 단속을 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정부도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2025년 2월, 태국은 미얀마 접경의 5개 지역 전력 공급을 중단하며 콤파운드 활동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인터넷과 연료 공급까지 막는 조치가 이어졌다. 태국 정부는 이러한 조치가 “사이버 사기 근절을 위한 안보 대응”이라고 설명했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콤파운드가 자가 발전기나 위성 통신으로 버티고 있어 실질적 타격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이 국가 차원에서 전력과 통신을 동시에 차단한 것은 이 범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로 해석된다. 범죄자들이 단속을 피해 콤파운드를 인접국으로 옮기는 구조를 고려할 때, 국경을 넘어선 공동 대응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는 현실도 드러났다.
픽사베이 = 태국
라오스, ‘조용한 중간 기착지’로 떠오르다
관광지로 잘 알려진 라오스도 최근엔 조용한 위험지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미얀마·캄보디아를 잇는 지리적 요충지인 만큼, 콤파운드 조직이 단속을 피해 이동하는 중간 경유지로 자주 활용된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국 자본이 대거 유입된 ‘골든트라이앵글 경제특구(SEZ)’ 일대가 문제로 지목된다. 카지노와 리조트가 밀집한 이 지역은 외견상 관광 중심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온라인 사기나 인신매매가 은밀히 이뤄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UN 인권기구는 라오스를 “스캠 삼각지대의 한 축”으로 분류하며, 동남아 인신매매 피해자 중 상당수가 라오스를 경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라오스에서는 아직 한국인 직접 피해 사례가 공식 확인된 바는 없기 때문에, “잠재적 위험 국가”로 분류하는 것이 정확하다.
필리핀은 오랫동안 외국인 납치와 총기 범죄로 악명이 높다. 특히 민다나오 남부 지역은 지금도 외교부가 ‘여행금지’로 분류하고 있는 구역이다. 잠보앙가 반도, 술루 섬, 바실란, 타위타위 등은 무장단체 활동이 잦고, 납치 사건이 반복되어 왔다.
반면 마닐라를 비롯한 수도권과 세부·보라카이 등 주요 관광지는 비교적 안전하며, 최근 몇 년간 치안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 다만, 현지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소규모 강도나 택시 범죄 등은 여전히 주의가 필요하다. 현지 대사관은 “고수익 일자리나 투자 제안 명목으로 접근하는 연락은 100% 사기”라고 강조한다.
픽사베이 = 필리핀
스캠 콤파운드의 구조적 특징
이들 국가의 범죄는 모두 비슷한 구조로 작동한다.
먼저 SNS나 채용 사이트를 통해 ‘고소득 해외 일자리’ 광고가 퍼진다. “월 500만 원 이상”, “숙식 제공”, “IT 전문직 채용” 등의 문구로 유인한 뒤, 입국한 피해자의 여권을 압수하고 콤파운드 단지로 옮긴다. 이후 감금된 피해자는 온라인 사기나 가짜 투자 상담에 동원되고, 목표 수익을 달성하지 못하면 폭행이나 전기 고문을 당한다.
UN은 이런 형태의 범죄에 “수십만 명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산한다. 구체적으로 미얀마 약 12만 명, 캄보디아 약 10만 명이 강제로 온라인 사기 업무에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 사기 조직이 아니라, 사실상 ‘사이버 노예 산업’에 가깝다.
한국 정부는 2025년 들어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한국인 사건 전담 조직(K-Desk)’을 설치해 현지 경찰과 공조하고 있으며, 향후 주요 거점 도시로 확대를 검토 중이다. 외교부는 미얀마·라오스·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를 ‘스캠 고위험 지역’으로 별도 관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콤파운드가 군사조직의 통제 지역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수사 인력이 접근하기 어렵고,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의 특성상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개인 차원의 예방과 경계가 가장 중요한 방어선으로 남는다.
물론, 동남아시아 전체가 위험 지역은 아니다. 방콕, 세부, 하노이, 다낭 등 주요 관광 도시는 여전히 많은 한국인이 찾는 안전한 여행지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 ‘안전’은 철저한 정보 확인과 주의 위에만 세워질 수 있다. 고수익 일자리 제안, 의심스러운 투자 권유, 현지에서의 무리한 이동은 단 한 번의 부주의로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따뜻한 휴양지의 미소 뒤에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 지금 동남아를 향하는 여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경계심이다.